지난 기획/특집

[르포] 다문화·이주노동자 가정 아이들 24시간 돌보는 ‘베들레헴어린이집’

이소영 기자
입력일 2018-12-31 수정일 2019-01-02 발행일 2019-01-06 제 3127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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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러지는 세상, 너희 모두 소중하고 사랑스럽단다
서울시 시정 다문화 어린이집
보육유공자 대통령 표창 받아
아이들뿐 아니라 부모 교육도

서울 성북구의 한 언덕 위에는 ‘베들레헴어린이집’이 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어느 작은 고을 베들레헴의 마구간처럼 서울 한 귀퉁이에 있는 자그마한 다문화 통합어린이집이다. 서울시 지정 다문화 다민족 어린이집인 이곳은 2018년 12월 19일 ‘2018년 보육유공자 정부포상’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다문화·이주노동자 가정 아이들을 24시간 보육해 사회의 일원으로 건강하게 성장시키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12월 28일 베들레헴어린이집을 찾았다.

“수녀님, 수녀님, 보고 싶었어요.”

세네갈에서 온 암미둘(가명·5)은 베들레헴어린이집 원장 김정희 수녀를 보자마자 달려가 안긴다. 세미나 참석 때문에 이틀여 간 아이들을 보지 못했던 김 수녀는 암미둘에게 되물었다. “얼마만큼?” 그러자 암미둘이 두 손으로 크게 원을 그리며 말한다.

“이~만큼요.” 김 수녀는 “수녀님도 너무 보고 싶었어요”라며 암미둘을 꼭 안았다.

서울 성북구 창경궁로35다길 108에 위치한 베들레헴어린이집. 이곳에서 암미둘은 24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곳에는 캄보디아에서 온 현석이(가명)와 베트남에서 온 기현이(가명)도 있다. 몽골에서 온 희민이(가명)와 필리핀에서 온 나윤이(가명) 등 만 1세부터 5세까지 다문화가정이나 이주노동자 가정 아이 등 25명이 지내고 있다. 암미둘을 포함해 3명은 24시간 어린이집에서 지내고, 22명은 저녁까지 다 먹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간다. 이들은 다문화가정이나 이주노동자 가정의 아이들로, 대부분 부모가 야간에까지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김 수녀를 비롯한 교사, 조리사 등 베들레헴어린이집 관계자 8명은 아이들에게 선생님이자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있다. 또 다른 엄마들인 셈이다.

■ 24시간 돌봄으로 양육 부담 덜어줘

베들레헴어린이집은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가 설립하고 서울대교구 이주사목위원회가 관리하는 다문화 통합어린이집이다. 2003년 8월 서울 성북구 보문동에 있는 가톨릭 노동사목회관 산하 ‘베다니아 집’에 다문화가정과 이주노동자 자녀 8명이 입주한 것이 시초다. 당시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는 경제나 언어문제 등으로 인해 다문화가정이나 이주노동자 가정에는 특별히 24시간 자녀 양육 돌봄 서비스가 더욱 필요하다고 판단해 베다니아 집 일부를 이들에게 내어줬다. 시설은 2004년 2월부터 살레시오수녀회에 위탁돼 ‘베들레헴아가방’으로 운영됐고, 그해 9월 현재 위치인 서울 성북구 성북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2007년 12월부터는 ‘24시간 및 휴일 보육시설’로 인가받아 다문화가정과 이주노동자 가정 아이 중 야간에도 도움이 필요한 가정의 아이들에게 24시간 내내 식사와 돌봄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있다. 사회의 가난하고 고통 받는 가정의 양육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부모가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하고, 아이가 불안정한 환경 대신 안정적인 보육환경에서 자라도록 지지하고 있다.

2018년 12월 28일 찾은 베들레헴어린이집. 복도에 전시된 세계 여러 나라 인형들과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

■ 진정 사랑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게

베들레헴어린이집의 이러한 24시간 돌봄 활동은 교회의 카리타스 정신에 기반을 두고 있다. 특히 베들레헴어린이집의 카리타스 정신은 아이들에 대한 전인적 교육에서 확연히 알아볼 수 있다. 베들레헴어린이집에서는 성과 위주의 교육 대신 인성교육을 중심으로 아이들을 길러내고 있다. 일례로 베들레헴어린이집에서 실시하고 있는 생태 영성 교육은 아이들이 가족과 이웃, 나아가 자연을 사랑하는 자세를 갖도록 만들고 있다. 텃밭 가꾸기와 숲 체험 활동들을 꾸준히 하게 함으로써 아이들 스스로 자신이 세상의 일부이고 모두와 상생해 살아가는 존재라는 인식과 마음가짐을 심어주고 있다.

무엇보다 베들레헴어린이집에서는 ‘어린이들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어린이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는 의식을 기본으로 삼고 있다. ‘사랑은 주는 사람이 아닌, 받는 사람이 느낄 수 있어야 진정한 사랑’이라는 의미다. 또 이들은 ‘교육은 마음의 일’, 즉 교육도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여긴다. 교육한다고 해서 다 교육이 아니라, 아이들 입장에서 교육을 통해 사랑을 느껴야 비로소 진짜 교육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 부모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

베들레헴어린이집의 이 사랑은 아이들에게만 향하는 것이 아니다. 베들레헴어린이집은 다문화가정과 이주노동자 가정의 부모들을 위해서도 다양한 돌봄을 제공하고 있다. 부모 개별 상담과 한국어 교육, 육아 정보 교류 등 다문화가정과 이주노동자 가정 부모들이 한국사회에서 문화를 이해하고 화합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여러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특히 이들의 일자리 구하기나 국적취득 등을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정기적인 치료가 필요한 엄마들에게는 가톨릭대학교 여의도성모병원의 도움을 받아 병원에 다니게 하는 등 지역사회와 연계해 이들을 돌보고 있다.

2011년부터 베들레헴어린이집에서 일한 서순복(페트라·58·서울 신당동본당) 교사는 “아이 엄마들이 타국에서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며 “엄마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우리 어린이집에서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부모들도 돌보고 교육하고 있다”고 말했다.

※후원 국민은행 093401-04-245084 예금주 베들레헴어린이집

※문의 02-3676-7705 베들레헴어린이집

■ 베들레헴어린이집 원장 김정희 수녀

“이주사목의 나아갈 길 알렸다 생각해요”

아이들과 이야기하며 웃고 있는 김정희 수녀.

“앞으로 교회가 나아가야 할 이주사목의 방향을 알려줬다고 생각합니다.”

베들레헴어린이집 원장 김정희 수녀는 어린이집의 2018년 보육유공자 정부포상 대통령 표창 수상에 대해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이주사목이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일이고, 베들레헴어린이집 운영은 그에 맞는 중요한 일이라는 확신을 얻었다는 말이다.

김 수녀는 “이번 수상자가 개인이 아닌 어린이집이라는 단체라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고도 말했다. “정부 미지원 시설이다 보니 경제적으로 많이 열악했다. 하지만 함께 해주신 많은 봉사자와 후원자 분들이 계셔서 어린이집을 운영해올 수 있었다”며 감사했다.

특히 김 수녀는 아이들을 ‘종합예술작품’이라고 표현했다. 아이는 아이를 낳은 부모와 아이를 돌보는 교사들, 이를 위해 도움을 제공하는 후원자 등 여러 사람의 종합적인 합심으로 성장해 나아가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의미다. 김 수녀는 이렇게 소중한 아이들인데도 불구하고, 다문화가정이나 이주노동자 가정의 아이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김 수녀는 “다문화가정이나 이주노동자 가정, 그 가정의 아이들도 모두 우리와 같은 형제자매임을 인식하고 살아야 한다”며 “긍정적인 인식이 결국 행동으로 옮겨진다”고 밝혔다.

이소영 기자 lsy@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