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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가정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 김민수 신부

김민수 신부 (서울 청담동본당 주임)
입력일 2018-12-31 수정일 2019-01-02 발행일 2019-01-06 제 3127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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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 본당 사목회 가정분과 주관으로 피정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우선적으로 제목을 정하는 것이 문제가 됐다. 과거에는 당연히 ‘부부피정’이란 제목으로 신청을 받았지만, 요즘은 다양한 가정이 출현하다보니 부부뿐만 아니라 이혼, 별거, 사별, 혹은 기러기 아빠나 비혼자 등 나홀로 가정도 피정의 대상에 포함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범위를 넓혀 ‘가족 피정’이란 제목으로 홍보해 참가자를 모집했다. 모집 결과를 보니, 혼자 등록한 사람들이 참가자의 반 이상을 차지했다. 피정 내용 역시 부부관계에만 국한하지 않고 보편적인 인간관계를 위한 소통 방법을 다뤘다.

가정의 달 5월이면 많은 본당에서 의례적으로 실시하던 ‘혼인 갱신식’도 이제는 신자들에게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어느 본당에서는 신청하는 부부가 별로 없어서 혼인 갱신식 행사를 취소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전통적 가정사목 프로그램이 시대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데서 생겨나는 결과다. 다양한 가정이 출현하는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가정사목 패러다임이 구축되어야 한다. 가정사목에 대한 쇄신의 노력이 없다면 늘 과녁을 빗나가는 화살과 같을 것이다.

21세기의 가정은 급속한 변화를 겪고 있다. 청년이나 독거노인 층의 1인 가구 증가, 저출산율, 이혼과 재혼의 증가 등으로 다양한 가정이 늘어나는 현실에서, 교회가 부모와 자녀로 이루어진 가정을 ‘정상 가정’으로 하는 전통적인 기준을 고수한다면 나머지 가정은 비정상적 가정이거나 사목적 배려를 받지 못하고 배제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오늘날 모든 가정이 사회구조나 체제의 변화에 엄청난 영향을 받고 있음에도 기존의 가정사목은 가정의 문제를 사적 영역으로 국한시켜 개인이나 개별 가족 차원의 사목 프로그램에 머물러 있지 않나 생각된다. 특히 교회에는 아직도 가부장적인 가정관이 남아 있어서 여성이 소외되고 고통을 겪는 불평등한 구조에 대해서는 이슈로 별로 다루어지고 있지 않고 차별의 현실이 지속되고 있다.

올해 서울대교구 사목교서는 선교의 기초이며 못자리로 가정공동체를 강조하며 가정사목에 중점에 두고 있어 매우 기대가 된다. 구체적인 사목활동으로 조부모와 부모, 자녀로 신앙이 이어지는 가정 안에서 신앙의 유산 전달, 매일 가정기도, 매주 가정 안에서 복음나누기 등 여러 가정성화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시대적 변화를 감안한 프로그램들도 있겠지만 다양한 가정보다는 부부와 자녀로 이루어진 가정에 주로 초점을 맞추어져 있다는 인상이 든다. 비혼, 이혼, 사별 등으로 혼자 사는 이들을 위한 1인 가정 프로그램, 조손 가정, 입양 가정, 어머니와 딸만 사는 가정, 아버지를 위한 양육과 가사 프로그램, 다양한 가족 캠프 등이 고려되면 좋겠다. 특히 문화적인 접근을 통한 가정사목 프로그램이 더욱 어필될 수 있다. 예를 들어, 1인 가정을 위해서 함께 모여 식사하는 자리를 갖는 ‘소셜 다이닝’이 있다. 사회적으로 대표적인 예가 ‘집밥’ 네트워크다. 이 사이트 회원들은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모임을 주선하기도 하고 참석하여 함께 식사하며 나눈다. 이런 모임 중에는 책을 매개로 정기적인 모임을 하여 함께 식사하고 읽어온 책의 내용을 나누기도 한다. 아무튼 외적으로는 1인 가정으로 홀로 사는 삶을 선택했지만 공동체적인 삶을 추구하는, ‘따로 또 같이’의 형태가 되고 있다.

가정사목이 문화와 접목될 수 있는 가능성은 무한하다. 예를 들어, 가정의 문제를 문화공연장에서 재현하고 그것을 간접체험하는 방식이다. 필자는 오래 전에 대학로에 있던 어느 극단과 손을 잡고 가족뮤지컬 ‘패밀리 래퍼스’를 20여개 본당을 순회하며 공연한 적이 있다. 그 형식과 내용을 보면, 부부간의 갈등, 부모 자식의 갈등 그리고 용서와 화해를 신나는 랩과 힙합에 실어 전하고 있는데, 이혼율이 높은 한국의 현실에서 예수-마리아-요셉의 나자렛 성가정을 되살리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가족 뮤지컬은 당시에 매우 신선한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가정사목에 대한 문화콘텐츠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지 알 수 있다. 이제 교회는 전통적인 가정사목에서 벗어나 사회변화를 수용하는 프로그램, 문화 시대에 걸맞은 콘텐츠를 연구하고 개발하는데 인적, 물적 투자를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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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신부 (서울 청담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