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에세이] 가정을 채우는 다섯 가지 양념 / 이진이

이진이 (헬레나·제1대리구 상현동본당)
입력일 2018-12-31 수정일 2019-01-02 발행일 2019-01-06 제 3127호 3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 설탕, 그 달콤한 깨달음
단맛이라는 즐거움, 질병이라는 괴로움. 순기능과 역기능을 동시에 가진, 가정의 세 번째 양념은 설탕입니다. 오늘은 하얗고 뽀얀 것이 설탕을 닮은 ‘눈’ 이야기를 꺼내볼까 합니다.

경제적으로 변곡점을 찍어, 당장 끼니 걱정이 어려운 때가 있었습니다. 지독히도 춥고 주책없게 눈도 많이 내리던 겨울, 저희 집 막둥이에겐 방한화가 필요했습니다. 꼬깃꼬깃한 만 원을 손에 쥐고, 겨우겨우 고른 것은 팔천구백 원짜리 어그 부츠 하나. 방한화가 생겼다고 좋아하는 막둥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오는데, 눈치 없는 눈은 계속 내렸습니다. 그리고, 길 중간에서 막둥이의 어그 부츠가 다 젖었습니다.

“엄마, 발이 시린데 어떡하지?”

저를 바라보는 막둥이의 눈은 여느 때보다 가엾게 다가왔습니다. 선택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그저 아이를 업고 눈 사이를 가르면서, 푹푹 패인 눈길을 빨리 걷는 것 밖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제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나요?’

울고 또 울었습니다. 눈이 싫었습니다. 눈이 정말 싫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새끼에게 잘 해주지 못하는 무기력함이 싫었습니다. 하느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런데 막둥이는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체감하는 슬픔보다, 막둥이의 기쁨이 더 컸습니다. 엄마가 업어줘서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날의 기억은 자식을 키우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설탕 같은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맛있는 음식, 보상, 이렇게 환원할 수 있는 기쁨과 만족감을 주는 것보다, 그냥 엄마가 옆에 있어주는 게 선물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가정에서의 봉사는 물질적인 것,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줬으니 돌려받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가족과 함께 하는 달콤함이 잘 버무려져서, 모든 선을 향한 사랑의 성장을 도울 수 있길 기도합니다.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이진이 (헬레나·제1대리구 상현동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