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466) 천주교 믿어 봐야 별거 있겠어! (하)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8-12-24 수정일 2018-12-26 발행일 2019-01-01 제 3126호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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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평생 천주교 신자로서 기도의 삶을 사셨던 할머니 앞에서 단지 ‘예배당’에 다니고 싶은 마음으로 ‘천주교 믿어 봐야 별거 있겠어’라는 말을 해 버린 수사님. 그런데 수사님 말로는 그날, 이 말이 전부가 아니었답니다. 원래 하고 싶었던 말은 ‘성당 가면 뽑기 놀이도 안 하고, 먹을 것도 안 주고’ 그런데 이 말을 하기도 전에 할머니가 우시는 바람에.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말을 끝까지 안 한 것 또한 천만다행이었답니다. 그날, 그 무거운 분위기에서 그 말을 마저 다 했다가는 아버지까지 갈 필요 없이 어머니와 누나들에게 맞아 죽을 뻔했기에!

그 사건이 난 후 일주일이 흘렀습니다. 예전과 다름없이 주일 날 수사님네 가족들은 미사를 다녀왔고, 수사님은 방으로 들어갔답니다. 그리고 10분 후 할머니가 수사님을 불렀답니다.

“아가, 어여 나와 봐. 그리고 와서 이거 한 번 뽑아 봐.”

할머니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잽싸게 마루로 나왔더니, 할머니는 ‘뽑기 놀이’ 원판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계셨습니다. 또한 할머니 옆에는 비닐봉지가 있는데 그 속에는 ‘뽑기 놀이’ 경품들이 대거 들어 있었습니다.

“어, 할머니, 이거 ‘뽑기 놀이’인데.”

“응, 그래. ‘뽑기’ 하는 거야. 하느님께서 우리 손자가 성당을 잘 다녀올 때마다 한 번씩 하라고 이 할미에게 주셨어. 어여 한 번 해 봐. 한 번 뽑아 보렴.”

그 수사님은 해맑게 웃으시는 할머니의 얼굴을 보고 눈물이 핑 돌았답니다. 하지만 입술을 꾹– 깨물고, 마치 아무렇지도 않는 듯, 신나는 표정을 지으며 ‘뽑기 놀이’ 판에서 번호를 뽑았는데…. 눈물을 흘릴 새도 없이, ‘꽝’이 걸렸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방글방글 웃으시며,

“우리 아가, 어쩌나. 그래, 한 번 더 뽑아 볼래?”

안쓰럽게 자신을 쳐다보는 할머니 앞에서 한 번 더 뽑고 싶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답니다. 그래서 그 수사님은,

“아녜요, 할머니. 다음에 미사 다녀오면 다시 한 번 뽑을래요.”

또 다른 감정이었지만, 그 수사님은 학교 앞 상점이나 동네 ‘예배당’에서만 뽑을 수 있었던 ‘뽑기 놀이’를 자신의 할머니가 가지고 있다는 것이 무척 뿌듯했답니다. 그러면서 수사님은 당시를 회상하며 말하기를

“강 신부님, 그날 우리 집에서 동네 아이들의 선망의 대상인 ‘뽑기 놀이’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아마도 모를 거예요. 내 생각에 작은 누나가 할머니에게 다 일러바친 것 같아요. 내가 ‘뽑기 놀이’를 하고자 ‘예배당’을 다니고 싶어 한다고. 그래서 할머니는 어떻게 샀는지는 지금도 모르지만, ‘뽑기 놀이’를 통째로 사 놓으신 거예요. 그 후 나는 주일 날 미사뿐 아니라, 평일 날 미사도 할머니랑 엄마 따라서 자주 다니고 그랬어요. 왜냐하면 성당을 갔다 오면 우리 집 마루에서 할머니랑 ‘뽑기 놀이’를 할 수 있었거든요. 그 옛날 어린 마음에, 천주교 믿어 봐야 ‘뽑기 놀이’도 안한다고 생각했지만, ‘뽑기 놀이’ 때문에 성당을 부지런히 다녔더니, 결국 이렇게 사제가 되었네요. 그리고 수도 생활하면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았더니,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하느님이 모든 것을 다 채워 주시더라고요. 천주교를 진짜 성실하게 믿으니,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다 채워 주셨어요.”

수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히려 내 마음에 ‘짠’ 하였습니다. 어린 마음에, 천주교 믿어 봐야 별거 없다고 생각했지만, 지금까지 자신의 전부를 걸고 하느님을 믿었더니 하느님께서 자신의 모든 것을 은총과 사랑으로 채워주셨다고 고백하신 그 수사님의 삶에 진정 깊은 박수를 보냅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