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 인정하며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는 활동 펼쳐 선교회 총본부 홍콩으로 옮겨 중국 비롯한 아시아 선교 주력 사람들 가운데서 대화하며 시대의 징표 발견하고 응답
중국 선교를 위해 설립된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총장 팀 멀로이 신부, 한국지부장 임영준 신부, 이하 골롬반회)는 지난해 창립 100주년을 기념했다. 현재 미주와 유럽, 오세아니아 지역에서도 선교활동을 하고 있지만, 골롬반회의 주요 선교 무대는 중국을 위시한 아시아 지역이다. 아시아복음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골롬반회의 활동을 통해 앞으로 한국교회가 아시아 선교를 위해 어떻게 노력해야 할지 알아 본다.
골롬반 성인은 ‘그리스도를 위한 나그네’가 돼 다른 문화 속에서 복음을 전하며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고 정의를 위해 선교활동을 펼친 선교사였다. 1918년 설립된 골롬반회는 주보성인 골롬반 성인을 따라 다른 문화 속에 살면서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며, 가난한 이들과 함께 연대하고, 정의를 위한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다. 골롬반회의 첫 선교지는 중국이었다. 창립자 에드워드 갈빈 신부(후에 주교가 됨)는 1912년 중국에 첫발을 디뎠다. 중국에서 4년 동안 빈센트회 선교사들과 함께 활동하던 갈빈 신부는 중국선교에 더 많은 선교사들이 투신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갈빈 신부는 역시 중국 선교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존 블로윅 신부를 만나 중국선교를 위한 골롬반회를 설립했다. 골롬반회는 1920년 갈빈 신부와 블로윅 신부를 포함해 16명의 선교사를 중국으로 파견해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갈빈 신부는 중국 골롬반회의 책임을 맡아 1920년에서 1952년까지 활동했다. 1924년 중국의 한양지목구장으로 임명됐고, 1927년 같은 교구의 주교가 됐다. 갈빈 신부는 당시 이념 갈등과 대규모 홍수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구제사업 등을 적극 펼쳤다. 하지만 중국이 공산화된 뒤 1952년 추방돼 아일랜드에서 지내다 1956년 선종했다. 골롬반회는 중국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다른 지역에도 눈을 돌렸다. 1928년 필리핀, 1933년 한국, 1936년 버마(현 미얀마), 1948년 일본에 차례로 진출했다. 1950년대 중국에서 추방된 이후에는 남미의 페루(1951년)와 칠레(1952년), 남태평양의 피지(1952년)에 진출했다. 1971년에는 파키스탄에도 진출했으며, 1979년에는 대만 선교에 나서기 시작했다. 1986년부터 다시 중국 선교에 힘쓰고 있지만, 중국 정부의 탄압으로 본격적인 선교활동은 여의치 않은 상태다. 특히 골롬반회는 지난 2008년 5월, 총본부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홍콩으로 옮겼다. 서구의 선교회가 본부팀을 아시아로 옮긴 첫 사례다.■ 대화를 바탕으로 한 선교 활동
골롬반회는 아시아 지역에서 타종교와의 대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정의평화 활동 그리고 창조보전 활동, 특히 타종교와 연대해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활동에 역량을 모은다. 그리고 이 모든 활동의 기저에는 대화가 있다. 흔히 선교 활동은 가급적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을 시키거나 가난한 이웃을 돕는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골롬반회는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 이들이 원하는 것을 대화로 살피고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선교의 기본 방침으로 두고 있다. 가난하고 소외받는 이들의 요청과 시대의 징표에 응답하고 정의평화와 창조보전 활동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높이고 소외된 이웃들이 자존감을 세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골롬반회는 계속해서 시대의 징표를 민감하게 발견하고 시대의 요구에 응답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특히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골롬반회의 선교에 대한 인식과 선교를 수행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골롬반회는 공의회 이후 지역의 문화를 더욱 적극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골롬반회는 1976년 총회를 통해 정의평화 부서 설치, 가난한 이들의 해방, 타종교와의 대화를 선교회의 주요 임무로 규정했다. 이어 1988년에는 환경보호와 평신도 선교사 양성을, 1994년에는 사제와 평신도의 공동 협력을, 2006년에는 기후변화 대처를 선교 활동의 주요 과제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노력의 바탕에는 항상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과 연대가 자리잡고 있다.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