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제52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요지

정리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18-12-24 수정일 2018-12-26 발행일 2019-01-01 제 3126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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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치는 평화에 봉사합니다”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1968년 1월 1일을 세계 평화의 날로 선포하고, “평화란 생명과 진리와 정의와 사랑이 지닌 가장 높고 절대적인 가치”라고 천명했다. 아울러 매년 1월 1일을 세계 평화의 날로 제정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올해 제52차 세계 평화의 날을 맞아 ‘좋은 정치는 평화에 봉사합니다’ 주제로 담화를 발표했다. 그 내용을 요약하여 소개한다.

1.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루카 10,5)고 말씀하셨습니다.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 제자들이 맡은 사명의 핵심입니다. 이 평화는 비극과 폭력으로 얼룩진 인류 역사 속에서 평화를 갈망하는 모든 이에게 전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집’은 모든 가정, 모든 공동체, 모든 나라, 모든 대륙을 의미합니다. 무엇보다도 구별이나 차별 없이 모든 개인을 의미합니다. 이 집은 우리 ‘공동의 집’, 곧 하느님께서 우리가 살아가도록 마련해 주신 이 지구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저도 바로 이 말씀으로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2. 좋은 정치를 위한 도전 과제

평화는, 시인 샤를 페기(Charles Péguy)가 칭송하는 희망과 유사합니다. 평화는 폭력의 돌밭에서 피어나는 여린 꽃 한 송이와도 같습니다. 정치는 인간 공동체와 제도를 설립하는 데에 근본이 되는 수단입니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정치 활동을 인류 공동체에 대한 봉사로 여기지 않을 때, 정치는 억압과 소외와 심지어 파괴의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정치의 역할과 책무는 국가에 봉사하도록 부름받은 모든 이에게 끊임없이 도전 과제를 제기합니다. 정치인들은 자기 나라를 위해 봉사하면서 그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정의롭고 가치 있는 미래를 위한 조건을 창출하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사람들의 생명과 자유와 존엄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을 바탕으로 정치 활동이 이뤄진다면, 정치는 참으로 사랑의 탁월한 형태가 될 수 있습니다.

3. 사랑과 인간적 덕행: 인권과 평화에 봉사하는 정치의 기본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은 “공동선을 위한 노력이 사랑으로 활성화되면 단순한 세속적 정치적 활동보다 더 값어치 있는 것이 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문화나 종교와 관계없이 인류 가족의 선익을 위해 함께 일하기를 바라는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이 대의에 동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선거와 공직 생활의 모든 단계는 정의와 법에 영감을 주는 원천과 기준을 되짚어 보는 기회가 됩니다. 분명한 것은, 좋은 정치는 평화에 봉사한다는 것입니다. 좋은 정치는 상호 의무이기도 한 기본 인권을 존중하고 증진해 현 세대와 미래 세대를 신뢰와 감사의 유대로 이어 줍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좋은 정치는 평화에 봉사합니다’를 주제로 제52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를 발표했다. 사진은 2018년 8월 바티칸에서 열린 국제 가톨릭 국회의원 네트워크 연례회의 참석자들과 만난 프란치스코 교황. CNS 자료사진

4. 정치적 악습

정치는 미덕과 함께 개인의 무능이나 체계와 제도의 결함으로 인한 악습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악습은 정치에 참여한 이들의 권위, 결정, 행동뿐만 아니라 정치 생활 전반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립니다. 참된 민주주의 이상을 위태롭게 하는 이러한 악습은 공직 생활에 불명예를 초래하고 사회 평화를 위협합니다.

5. 좋은 정치는 젊은이의 참여와 타인에 대한 신뢰를 증진합니다.

정치권력이 소수 특권층 개인의 이득을 옹호하는 목적으로만 행사될 때, 미래는 위태로워지고 젊은이들은 불신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가 젊은이들의 재능과 열망을 구체적으로 북돋워 준다면, 젊은이들의 얼굴과 앞날에는 평화가 피어날 것입니다. 정치가 개개인의 재능과 능력을 인정하는 것으로 드러날 때에, 정치는 평화에 봉사합니다.

참된 정치 생활은 개인들의 공명정대한 관계와 법을 바탕으로 합니다. 또한 모든 사람과 모든 세대가 지니고 있는 잠재력, 곧 관계와 지성과 문화와 영성의 측면에서 새로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잠재력을 확신할 때에 참된 정치 생활이 쇄신됩니다.

안타깝게도 정치적 차원에서도 국가주의나 폐쇄적 태도가 드러나고 있어서, 세계화된 이 세상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형제애에 대한 논란이 야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인류 가족의 선과 행복을 바라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참된 전달자이자 증인이 될 수 있는 ‘평화의 장인들’이 더욱더 필요합니다.

6. 전쟁과 공포 전략에 대한 단호한 반대

평화는 결코 권력과 공포로 이뤄지는 균형으로만 평가 절하돼서는 안 됩니다. 다른 이들에 대한 위협은 그들 지위를 격하해 대상화시키고 그들의 존엄을 부정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고조되는 위협과 무절제한 무기 확산이 윤리에 어긋나며 참 평화의 추구를 거스르는 일임을 우리는 다시 한 번 선언합니다.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자행되는 테러는 주민 전체가 평화의 땅을 찾아 망명하지 않을 수 없게 내몹니다. 이민을 온갖 악의 온상이라고 비난하며 가난한 이들에게서 희망을 빼앗아가는 정치 담론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평화는 개인적 배경 여하를 막론하고 개개인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을 재천명해야 합니다.

전 세계 어린이 여섯 명 가운데 한 명이 전쟁의 폭력 또는 그 상흔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이 어린이들을 지키고 그들의 존엄을 수호하고자 힘쓰는 사람들의 증언입니다.

7. 평화를 위한 위대한 계획

평화는 인간의 상호 책임과 상호 의존에 근거한 위대한 정치 계획의 열매입니다. 그런데 평화는 날마다 새롭게 받아들여야만 하는 과업이기도 합니다. 평화는 마음과 영혼의 회개를 수반합니다. 이러한 내면의 평화와 공동체의 평화는 다음과 같은 세 측면을 지닙니다.

‘자기 자신과의 평화’는 아집과 분노와 조급함을 거부합니다. ‘남들에게 온유’하고자 한다면, ‘자기 자신에게도 온유’해야 합니다.

‘다른 이들과의 평화’는 가족, 친구, 낯선 이들, 가난한 이들, 고통받는 이들과의 평화로 그들을 만나기 꺼리지 않고 그들 말에 귀기울이는 것입니다.

‘피조물과의 평화’는 하느님 선물의 위대함을 재발견하고 이 세상에 살면서 미래 주역이자 시민이 될 우리 각자의 책임을 재발견하는 것입니다.

평화의 정치는 인간의 나약함을 잘 알고 이를 기꺼이 짊어집니다. 또한 평화의 정치는 구세주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시며 평화의 모후이신 마리아의 노래(Magnificat)에서 언제나 영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정리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