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465) 천주교 믿어 봐야 별 거 있겠어!(상)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8-12-18 수정일 2018-12-26 발행일 2018-12-25 제 3125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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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대대로 천주교를 믿었던 어느 수사님이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 하나를 나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그 수사님은 주일이 되면 가족들과 함께 성당에 꼬박꼬박 다녔답니다. 특히 할머니와 어머니는 평일 미사도 거의 빠지지 않으시는 분이셨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이 살던 동네에 ‘예배당’ 하나가 생겼고, 거기서 예비신자들을 모집하였답니다.

특히 그 ‘예배당’에서 어린이를 모을 때면 우선 ‘어린이 예배’에 오게 했답니다. 그런 다음 ‘어린이 예배’가 끝난 후에는 어김없이 ‘뽑기 놀이’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시 ‘예배당’을 다녔던 친구들 말로는 ‘어린이 예배’가 끝난 후에는 일찍 온 순서대로 몇 사람이 ‘뽑기 놀이’ 판에 있는 번호를 뽑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답니다. 그런데 번호를 잘 뽑으면, 정말이지 그 당시 어린이들이 원하는 인형, 사탕, 과자 등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월요일에 학교를 가면, 그 ‘예배당’을 다니는 친구들이 ‘이번에 교회 가서 자기는 무엇을 뽑았다’, 또 ‘누구는 더 좋은 것을 뽑았다’는 말들을 자랑처럼 했답니다. 그러나 그 수사님은 시골 성당을 다녔기에, ‘어린이 미사’도 없이 어른들과 함께 미사를 드린 후, 그냥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니 월요일 날 학교 가면 친구들에게 할 말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 아침. 예전과 다를 바 없이 그 수사님네 가족들은 성당 갈 준비를 하는데, 그 수사님이 마치 선전 포고를 하듯이 말했답니다.

“나는 오늘부터 ‘예배당’에 다닐 거야.”

벌써 고운 한복을 차려입은 그 수사님의 할머니는 그 말을 제대로 듣지 않으셨는지,

“우리 아가, 성당에 늦겠다. 옷 입어야지.”

“할머니, 나 이제 성당 안 가. ‘예배당’에 갈 거야.”

그러자 할머니는,

“우리 아가가 뭐에 화가 나셨나. 그래, 오늘은 왜 성당 안 가려고?”

“할머니, 천주교 믿어 봐야 별 거 있겠어….”

그 수사님 말로는 그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천주교 박해 장면을 본 적이 있는데, 그중에 어느 배우가 배교를 하면서 했던 대사가 ‘천주교 믿어 봐야 별 거 있겠어’였답니다. 그런데 그날, 할머니 앞에서 그 말을 해 버린 것입니다. 순간 집안에 무거운 정적이 흘렀고,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누나 둘의 움직임이 한순간 멈춰 버렸답니다. 한 가지 다행인 건, 그날 아버지가 출장을 가셔서 안 계셨답니다. 그날, 아버지가 계셨으면….

서서히 정적이 걷히면서 어머니의 무서운 눈초리와 두 누나의 황당한 표정을 볼 수 있었답니다. 그런데 가장 마음이 아픈 것은 할머니가 갑자기 가슴을 부여안고 너무나 서럽게 눈물을 흘리시더랍니다. 그리고 우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아이고, 그려, 내 탓이여. 내가 그동안 잘못 살아서, 우리 손자 아이가 이런 말을 다 하고. 천주님, 우리 성모님, 이제 어쩐당가. 천주님 앞에, 성모님 앞에 이 잘못을 어찌 갚을까. 천주님… 용서해… 아이고 성모님.”

그리고 쓰러지실 듯한 몸을 벽에 기대며 할머니는 당신 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수사님 말씀으로는 그날, 할머니는 피눈물을 쏟으시는 것 같았답니다. 할머니, 한 평생 하느님 안에서만 사셨고, 오로지 하느님만 바라보며 자식들과 손자들을 다 키우셨고, 이제는 매 순간을 하느님께 감사하며 언젠가 돌아갈 하느님 품을 기다리시며 날마다 기도하셨던 할머니. 그 할머니께서 처음으로 그토록 서럽게 우시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다음 호에 계속)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