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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편지] 제주도 성지순례 중에 만난 루돌프 사슴 코 / 양미숙

양미숙 (에스테르) 아동문학가
입력일 2018-12-18 수정일 2018-12-18 발행일 2018-12-25 제 3125호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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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거의 한 달에 한 번 성지순례를 다니는데 인생에 길이 남을 성지 순례는 작년 연말 크리스마스 시즌에 다녀온 제주도 겨울 여행이다. 딸이 회사에서 연말까지 휴가를 다 써야 한다는 통보에 모녀가 허겁지겁 제주도로 행선지를 잡았다.

모녀 여행을 처음 시작한 때는 딸의 중학교 시절 왕따 사건으로 시작됐다. 그때는 시댁 어르신들의 긴 투병과 직장 일에 파묻혀 살았고, 아이와 가족 모두 상처를 입어 몹시 지쳐있었다. 힘든 우리 가족을 지켜보던 영적 신부님의 권고로 모든 것을 접고 모녀가 여행을 다녀오게 됐다. 그 후 거센 폭풍은 지나갔었다.

작년 연말의 제주도 날씨는 늦가을 쪽빛 하늘처럼 푸르렀고 남쪽의 따뜻한 섬이라 돌담에 핀 동백꽃이 여행자를 포근하게 품어 줬다.

제주 목 관아 성지를 둘러보고 서귀포에 있는 호텔에 짐을 풀고 강정포구로 산책을 나갔다. 오후 눈부신 태양빛에 반짝이는 해안 둘레 길을 딸과 함께 친구처럼 손잡고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걸었다. 강정 마을길을 벗어나자 바닷가 포구는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았다는 모습으로 우릴 반겼다. 햇살이 스며든 바다에는 감빛 수평선 위에 회색 구름마저 섬처럼 보였다. 쓸쓸하다 못해 그리움으로 넘실대는 바다를 내려다보는 등대, 겨울바다의 황홀한 적막 속에 노랗게 퍼지는 태양의 빛들, 지금도 선명히 떠오르는 풍경이 생생하다. 그 바다가 차려준 산해진미의 맛은 덤이었다.

다음날 크리스마스 전야 미사를 드리려고 일찍 서귀포성당을 찾아갔다. 구유에 계신 아기예수님을 경배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때 청년성가대는 밴드연습을 하기 시작했고 보컬과 밴드연주를 맞추는 연습을 했다. 우리가 흔히 듣고 불렀던 노래 ‘루돌프 사슴 코’ 노래였다. 반복해 연습하던 터라 나도 모르게 드럼과 기타의 흥겨운 가락에 맞춰 따라 부르고 말았다. “루돌프 사슴 코는 매우 반짝이는 코, 만일 내가 봤다면 불붙는다 했겠지. 다른 모든 사슴들 놀려대며 웃었네. 가엾은 저 루돌프 외톨이가 되었네. 안개 낀 성탄절 날 산타 말하길, 루돌프 코가 밝으니 썰매를 끌어주렴. 그 후론 사람들이 그를 매우 사랑했네, 루돌프 사슴 코는 길이길이 기억되리.”

거듭 연습하는 노래를 속으로 따라 부르다가 늘 듣던 노래인데 하는 의문이 솟구쳤고, 반복될수록 기분은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심 쿵! ‘그래 맞다. 다름과 놀림이 언젠가는 행운이 된다’ 는 아기 예수님의 성탄 선물을 얼른 받았다. 우리는 분명히 루돌프 사슴 코였다.

지난달 발간된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 여사가 집필한 자서전 「비커밍」(Becoming)을 읽었다. 미셸 오바마 여사는 어떤 단체에서든 직장, 학교에서 늘 혼자였던 그녀에게 할머니는 “넌 해낼 수 있다”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고 그 격려가 자신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성장시킨 원동력 있었다고 서술했다. 책을 읽고 나서야 ‘남들보다 두 배 이상 잘해야 절반이라도 인정받는 흑인 사회의 현실’을 어린 미셀은 깨달았다는 중요한 사실도 알게 되었다. 루돌프 사슴 코, 제주도 성지순례 여행길에서 만난 행복의 씨앗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양미숙 (에스테르) 아동문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