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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세 260만 허와 실] 21 고해성사(告解聖事) 5 고해비밀

최홍국 기자
입력일 2018-12-17 수정일 2018-12-17 발행일 1991-01-13 제 1737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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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가 목숨걸고 지키는 의무

교회창립 이후 한차례도 깬적없어
신자도 고해내용·보속 발설말아야
‘부끄럽다’는 의식 탈피, 숨김없이 고백하도록
혹시 ‘고해비밀’을 믿지 못해 고해성사받기를 꺼리는 신자는 없을까?

가톨릭신자라면 누구나 교리시간이나 강론 등 각종 교육시간을 통해서 ‘고해비밀은 절대 지켜진다’는 사실을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고해성사에 임할 때 가기 싫은 재판장에 억지로 끌려가는 듯한 피고의 자세를 취하는 사례가 없지 않은 것도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일부 신자들이 성탄절 또는 부활절 판공성사를 볼 때 본당신부를 피해서 손님신부가 있는 고해소를 찾아가거나 고해소 안에서 죄를 고백할 때 큰 죄를 숨기려는 경향 등은 바로 고해성사에의 어려움을 말해주는 시례가 될 것이다.

사제에 대한 두려움이나 체면중시 사상 때문에 일어나는 이런 현상들에 대해 가톨릭대교수 유봉준 신부는 “안면 있는 본당신부를 기피하는 사례들은 인간적으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 라 말하면서도 “그러나 이 신부, 저 신부를 찾아가며 고해성사를 받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신자 개인의 영신적 발전에도 도움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덧붙여 “이 같은 사례는 엄격하게 말해서 고해비밀과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말하는 유신부는 “신자들이 고해성사에 임할 때 순전히 인간적인 생각으로만 접근하는 태도는 고쳐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울 명동본당 전례담당 홍근표 신부도 “어떤 신자에게서 신부님들이 혹시 어떤 일로 속이 상할 때 무의식적으로 고해 비밀을 누설해 버리지는 않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밝히면서 “고해비밀은 초대교회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누설된 적이 없는 신비”라고 잘라 말한다.

홍신부는 이어 “고해비밀은 일부러 지켜야 되겠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잊어버리는 것이 나를 포함한 모든 사제들의 공통된 특징인 것 같다”며 고해비밀누설에 관한한 염려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특히 우리교회는 고해성사 중 신자들의 고백내용을 토대로 사목방향을 결정하는 것조차 허용치 않고 있다는 사실을 봐서라도 신자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고해성사에 임해달라는 당부다.

얼마 전까지 명동본당 상설고해소의 고해사제로 일했던 대구 범어동본당주임 김임기 신부(꼰벤뚜알 성프란치스꼬회)는 “어느 신자로부터 고해성사 중 자신의 입으로 말하기 어려운 큰 죄에 대해서는 ‘이 밖에 말아내지 못한 죄에 대하여도 사하여 주소서’라는 경문 속에 포함시켜 버리는 얘기를 들었을 때 무척 안타까웠다”고 토로하면서 고해성사를 받을 때는 지은 죄에 대해서 본인이, 자기 입으로 고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일깨워 준다.

서울 정동 프란치스꼬회관 상설 고해소 담당 명레오나르도 신부는 “목숨을 걸고 고해비밀을 지켜온 사제들의 무용담(?)은 수없이 많다”며 가톨릭교회의 전통인 고해성사는 죽음까지 불사하면서 고해의 비밀을 지켜온 사제들에 의해 지켜졌다는 것이다.

사제들이 목숨까지 바칠 각오로 고해비밀을 지켜 온 얘기는 전쟁 중에 특히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가운데 네포묵의 성 요한을 비롯 고해비밀을 지키기 위해 굴욕적인 판결을 받아 시베리아로 추방당해 순교한 폴란드 신부이야기 등 유구한 교회역사 속에서 수많은 사례들이 전해져 오고 있다.

1888년 프랑스 프로방스지방의 성빅또아르성당에서 일어난 실화를 다룬 가톨릭출판사 발행책자 「고해의 비밀」은 성당지기였던 ‘로오자’가 살인을 저지른 후 고해의 비밀을 악용해 고해사제인 몽무랑 신부에게 살인죄를 덮어 씌웠지만 고해의 비밀은 지켜져 고해성사의 신성함이 오히려 더욱 값있게 드러난 사례 중 하나다.

이 책에서는 고해비밀을 악용한 살인자의 음모에 꼼짝없이 걸렸던 상태에서 충격을 받아 죽을 지도 모르는 늙은 노모와 큰 타격과 모욕을 당할 가톨릭교회를 걱정하는 몽무랑 신부의 기도를 통해 고해성사의 신비를 재음미하게 한다.

고해사제는 신자에게서 들은 고해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온갖 재물과 명예는 물론이요 목숨까지도 바쳐야 된다는 것이 교회가르침이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대리자인 고해사제에게 지워 준 가장 신성한 의무로서 엄격한 침묵을 명함으로써 고해성사의 완벽을 기하고자 한다는 가르침이다.

몽무랑 신부만이 아니라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고해성사의 신성함을 지키기 위해 고해의 비밀을 지키며 죄인 아닌 죄인으로 옥고를 치를수 있는 사제들이 있을 수 있다고 볼 때 우리신자들은 고해성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갖도록 스스로 적극 노력해야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 신자들은 “고해비밀은 고해사제만이 아니라 신자들도 지켜야한다”는 일선사목자들의 말을 새겨들어야 한다. 홍근표 신부는 “신자들 중 간혹 ‘그 신부님은 보속을 가볍게 주더라’ 또 ‘저 신부님은 어떻게 내리더라’는 식의 말을 쉽게 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고 “사제는 물론 신자들도 고해내용이나 보속에 관해서 고해소 밖에서는 절대 발설치 말아 줄 것”을 간곡히 당부한다.

아픈 환자가 의사 앞에서 벌거벗고 치료받아야 치유가 가능하듯이 영적인 치유요 하느님과의 허물없는 만남인 고해성사에 임할 때 ‘부끄럽다’는 식의 태도는 극복돼야 할 것이다.

최홍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