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문학과 성찰 / 심은섭

심은섭 (토마스) 시인·문학평론가
입력일 2018-12-11 수정일 2018-12-11 발행일 2018-12-16 제 3124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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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년대 유럽에서는 실내극장이 성행하면서 촛불을 관리하는 직업이 있었습니다. 소위 ‘촛불관리인’이었습니다. 촛농과 그을음이 생기는 수천 개의 양초 때문에 당시에는 반드시 필요한 직업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스등이 등장하면서 촛불관리인은 역사의 뒤안길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1860년대에는 ‘렉터’(Lector)라는 직업이 있었습니다. 노동자들의 지루함을 덜어주기 위해 공장 내 한가운데 서서 책이나 신문을 읽어주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라디오가 생기고부터 이 직업 역시 소멸되었습니다.

‘노커 업’(Knoker-up)이라는 직업도 존재했습니다. 인간알람시계와 같은 ‘모닝 콜러’(morning caller)였습니다. 이 직업은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반까지 알람시계가 없었던 영국과 아일랜드 등에서 산업혁명시대에 교대로 근무하는 영국 북부 공장마을의 노동자들의 잠을 깨워주는 알람 역할을 했습니다. 이 직업도 알람시계가 등장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직업 중 하나입니다.

근·현대에 들어와서도 극장 간판화가, 전화교환원, 식자공, 아이스커터 등 많은 직업들이 소리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이 와중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직업이 있었습니다. 바로 시인입니다. 시인이 오랜 역사의 부침 속에서 소멸하지 않고 지금까지 존재하는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한 편의 시로 반성하고, 한 편의 시로 성찰을 하고, 한 편의 시로 기도하고, 한 편의 시로 절망으로부터 구원하고, 한 편의 시로 혼탁한 세상을 청명하게 만들고, 한 편의 시로 부조리한 세력에 저항합니다. 이런 역할은 신이 내려준 시인만이 가지는 특권입니다. 그러므로 시를 쓴다는 것은 신의 명령에 복종하는 일입니다.

윤동주 시인은 ‘서시’에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한다고 성찰과 반성으로 일관되게 시를 썼습니다. 영국의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는 ‘인빅터스’(Invictus·굴복하지 않으리)에서 ‘나를 감싸고 있는 밤은/온통 칠흑 같은 어둠/나는 세상 모든 신에게 감사한다/내게 정복당하지 않는 영혼을 주셨음’에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심훈 시인은 ‘그 날이 오면’에서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나는 밤 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라며 일제의 만행에 저항하며, 광복의 날을 갈망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구상 시인은 ‘기도’에서 ‘이제 다가오는 불 장마 속에서/‘노아’의 배를 타게 하옵소서/그러나 저기 꽃잎 모양 스러져 가는/어린 양들과 한 가지로 있게 하옵소서’라고 우리 모두를 위한 구원의 기도를 한 편의 시로 간청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평화의 기도’에서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라며 평화의 기도를 했습니다.

이기철 시인은 ‘그렇게 하겠습니다’에서 ‘내 걸어온 길 되돌아보며/나로 하여 슬퍼진 사람에게 사죄합니다/내 밟고 온 길/발에 밟힌 풀벌레에게 사죄합니다’라며 성찰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한 편의 시로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이처럼 시인은 자기 삶에 대해 늘 성찰하고 잘못에 대해 반성하며 살고 있습니다. 시인들에겐 한 편의 시가 모두 기도문입니다. 시를 쓰는 그 순간이 주님과 일치하는 시간입니다. 따라서 시인이 시를 쓴다는 것은 한 편의 시로 기도하는 신앙인이라는 것입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심은섭 (토마스) 시인·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