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독자마당] 산골 공소에 도착한 양말 꾸러미

송 요안나(전주교구 정읍 시기동본당 등천공소)
입력일 2018-12-11 수정일 2018-12-12 발행일 2018-12-16 제 3124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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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내장산 작은 공소의 신자입니다. 나눔의 온기를 느낀 경험을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어 글을 보냅니다.

들깻잎 장아찌를 만들어 보려고 밭으로 향할 채비를 합니다. 장화 속에 도톰한 양말을 신어야 발바닥이 편해서 들일을 장시간 할 수 있기에, 양말을 넣어 둔 서랍을 열었습니다. 얇은 덧신이며 대부분 오래 신어 퇴색한 헌 양말들인데 그 사이에 등산양말처럼 튼튼하게 잘 짜인 다섯 켤레로 묶인 양말 다발이 눈에 쏙 들어옵니다. 아! 이 양말은 특별한 양말입니다. 농사일이 주업인 이곳 산골 공소 신자들의 발을 생각하며 ‘님’이 보내주신 애덕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등천공소는 일명 삿갓바위산이라고도 불리는 해발 654m인 입암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박해를 피해 숨어 들어온 선조들과 후손들이 척박한 땅을 일구며 오직 신앙을 지켜온 믿음촌이죠. 지금은 은퇴하신 두 분 수녀님의 보살핌 속에 신앙생활을 누리는 복 받은 곳입니다.

서 베네딕타 수녀님을 통해 “일할 때 유용하게 신으라”는 말씀을 전해 들었을 뿐…, 이 양말을 주신 분이 형제님인지 자매님인지, 본명이 무엇인지 저희들은 알지 못합니다. 스물 대여섯 명 모두에게 다섯 켤레씩 나눠주었으니 아마도 커다란 박스가 배달되었을 것입니다. 그것도 두 번이나 보내주셨지요. 첫 번째 받은 양말은 저도 나누고 싶어 주변의 꼭 필요한 분께 드렸습니다. 두 번째 보내주신 묶음에서 한 켤레를 꺼내 신고 일 바지 바짓단을 여며보니 아주 상쾌합니다. 지금 제 얼굴을 보셨다면 양말을 보내주신 ‘님’께서도 “그래! 내가 잘한 일 중 하나구나”하시며 매우 기분이 좋으실 것입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그 말씀이 왜 이리 제 가슴을 울리는지요.

양말을 두 켤레씩 포장했습니다. 신자가 아닌 앞집, 그리고 저 아래 아우님과 나누려고요. 사랑은 물 흐르듯이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라는 사실. ‘님’ 덕분에 그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면이나 방송에 나와 보란 듯이 거금을 쾌척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른손이 하는 일 왼손이 모르게 하는 사람도 많지요. 애덕을 몸소 실천하시며 사시는 ‘님’을 본받으려 노력하겠습니다.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는 걸 알게 해 주신 ‘님’!

저도 들깻잎 장아찌 많이 담가 나눌게요. ‘님’의 오른손이 늘 여기저기 어루만지시느라 바쁜 여정이시길, 우리 주님께서 사랑과 축복으로 천배 만 배 갚아주실 것을 저는 믿습니다.

송 요안나(전주교구 정읍 시기동본당 등천공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