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제8회 사회교리주간 기념 세미나

정다빈 기자
입력일 2018-12-11 수정일 2018-12-12 발행일 2018-12-16 제 3124호 8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교회 가르침 따라 ‘함께 살아갈 이웃’으로 환대해야
단일민족주의 비롯된 배타주의
다양성 인정하는 시민의식 필요
교회에도 존재하는 배타와 혐오, 거부감 극복하고 난민과 연대해야
제주 난민 지원 앞장선 신자들, 본당 차원 실천이 사회 변화시켜

12월 9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열린 ‘이민과 난민: 평화를 찾는 사람들’ 세미나에서 발제자들이 전체 토론에 임하고 있다.

세계화 시대, 더 나은 삶을 위해, 직업이나 교육의 기회를 찾아 고향을 떠나는 이민과 난민은 더는 특정 국가의 문제가 아니다. 가속화된 이주는 이방인에 대한 배척과 외면을 부추긴다. 그러나 이러한 배타와 혐오를 극복하는 데 앞장서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의무일 것이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이방인을 혐오하는 우리 사회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이를 극복하는 그리스도인의 역할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배기현 주교)는 12월 9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이민과 난민: 평화를 찾는 사람들, 극복해야 할 배타와 혐오’를 주제로 제8회 사회교리주간(12월 9~15일) 기념 세미나를 열었다.

배기현 주교는 인사말을 통해 “하느님은 인간을 선택적으로 사랑하시는 분이 아니며, 원래 그곳에 살던 사람이나 이방인 모두를 보살펴 주시는 분”이라며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모인 교회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배제된 이들을 돌볼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오늘 세미나를 통해, 이방인이 우리의 문을 두드릴 때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만날 기회라는 것을 깨닫고, 우리 교회가 이들의 어려움에 응답하고 환대하는 길을 모색하자”고 당부했다. 배 주교의 인사말은 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장 황경원 신부가 대독했다.

■ 우리 사회의 이방인 혐오, 원인과 극복 방안

제1발제를 맡은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홍성수 교수는 ‘우리 사회의 배타와 혐오’를 주제로 이방인 혐오의 원인과 대응 방안에 대해 발표했다. 먼저 혐오가 확산하는 이유로는 민족 중심주의 전통과 동화주의적 문화가 강한 한국의 사회문화적 배경과, 저성장 시대 경제 상황의 악화에 따른 개인의 취약성을 꼽았다.

홍 교수는 “이방인 혐오는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으로 나타난다는 점 외에도 무고한 이웃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우리 사회의 진짜 문제를 회피한다는 점에서 문제”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혐오와 차별로 신음하는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특히 교회 안에서 혐오 문제에 대처하는 희망을 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김정연 교수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배척과 환대’를 주제로 한 제3발제에서 국내 거주 외국인 수, 국제결혼 통계 등을 근거로 한국 사회는 이미 완전한 다문화사회로 진입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여전히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출신의 외국인 이주노동자에 대해서는 ‘타자’, ‘열등한 집단’이라는 고정관념이 강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김 교수는 “이주민에 대한 편견, 고정관념 더 나아가 사회적 차별이나 인권침해는 우리 삶의 구체적 일상에서 빈번히 발생하고 있으며 그 강도는 세지고 광범위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단일민족주의, 순혈주의에서 비롯된 외국인 배타주의”를 그 원인으로 들고, “우리 사회의 다양성이 확산하는 만큼 성숙한 다문화 시민의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방인을 받아들이는 것이 다문화가 아니라, 우리가 달라지는 것이 다문화라는 사고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 증오와 두려움을 극복하는 복음적 상상력

예수회 난민 봉사기구(Jesuit Refugee Service) 한국 대표를 맡고 있는 심유환 신부는 기조강연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가르침을 바탕으로 난민을 옹호하고 환대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고 요청했다.

심 신부는 “가톨릭교회의 전통과 역사는 난민과 이민의 이야기”라며 “보편교회는 모든 이방인들과 난민들에게도 복음이 선포되는 교회이지, 단지 우리 민족과 우리 개인만을 생각하는 의미의 교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인간 존엄성의 존중, 공동선과 연대성, 보조성의 원리를 추구하는 사회교리의 가르침은 교회가 난민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를 뒷받침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 난민에 대한 논쟁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하며 “그리스도인들이 난민에 대한 거부감과 반대를 극복하고 신앙인으로서 실질적으로 난민을 돕고 연대하며, 공동선을 이뤄가는 과정에 앞장서자”고 당부했다.

서울대교구 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 남창현 신부는 제2발제에서 ‘이주, 난민에 대한 교회의 관점’을 주제로 이방인을 환대할 것을 촉구한 교회 문헌들을 소개했다. 남 신부는 “가톨릭교회 가르침은 이주, 난민을 단순히 하나의 현상으로 바라보지 않으며, 이주는 인류의 본질 가운데 하나로 바라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스스로가 이민가정 출신인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주, 난민에 대한 관점은 더욱 적극적이고 역동적”이라며 “교황에게 사회적 약자들, 특별히 이민자와 난민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내는 소환장이며 동시에 우리를 각성케 해 새로운 지평으로 데려다 주는 핵심적인 동력으로 여겨진다”고 덧붙였다.

남 신부는 “증오는 맥락을 지니며 그 맥락의 시작은 두려움”이라며 “이 두려움에 대한 교회의 대안은 복음적 상상력”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증오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마비시키지만, 교회는 인간이 인간에게 씌어놓은, 수많은 편견과 혐오의 모습을 한 두려움의 딱지를 떼어내는 선봉에 서자”고 제안했다.

■ 본당에서 시작하는 이방인 환대

제4발제를 맡은 제주교구 동문본당 주임 임문철 신부는 지난 봄 제주도를 찾은 예멘 난민들을 본당 공동체에서 받아들인 경험을 중심으로 이방인을 환대하는 사목적 접근에 대해 발표했다. 임 신부는 제주도 난민 신청 추세를 소개하며 제주도는 현재 난민을 위한 법은 있지만 행정은 없고 제도적, 물리적 준비가 너무나 부족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7월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가 사목서한을 발표하고 “난민과 이주민에 대한 배척과 외면은 그리스도인으로서는 더더욱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음에도 제주교구 본당 공동체 모두가 환영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당시 상황을 소개했다. 그러나 동문본당을 비롯한 제주교구 신앙 공동체는 ‘이방인을 환대하는 것이 교회 가르침’이라는 믿음으로 지역 주민의 반발과 일부 신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숙소 제공과 물품 제공, 의료 지원 등에 앞장섰다.

임 신부는 “모두가 준비돼 있지 않았던 상황에서 제주교구의 적극적인 활동은 예멘 난민들을 지원하는 시민사회 활동의 구심점이 됐다고 평가받았다”고 말했다. 또한 “지난 10월 인도적 체류허가 후 많은 난민들이 육지로 떠났지만 여전히 여러 신자들이 제주도에 남은 난민들, 특히 어린이와 여성을 돌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제주교구 이주사목센터 ‘나오미센터’를 통해 자립의 기반을 마련한 예멘 청년 카림(가명)씨의 사례 발표가 있었다. 카림씨는 “어린 시절 비행사를 꿈꿨지만 난민이 되고 말았다”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또한 내전으로 폭격을 받아 부상을 당한 채로 고향을 떠나야 했고, 말레이시아를 거쳐 제주까지 오게 된 자신의 여정을 소개했다. 카림씨는 “어디에도 의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오미센터의 보살핌으로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면서 “한국어 공부를 계속하며 몸을 회복해 한국 사회에 정착하고 싶다”고 말했다. 세미나 참석자들은 큰 박수로 카림씨를 환영하고 목표를 응원했다.

뒤이은 토론에서도 일상화된 이방인 혐오를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들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참석자와 토론자들은 지역, 인종을 나누지 않는 개방성이 우리 사회에 절실히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또한 교회 공동체, 특히 본당 공동체가 실질적인 실천을 통해 이방인을 돕고, 만남의 기회를 확대해 나갈 때 교회가 진정으로 배타와 혐오를 극복하는 길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제시됐다.

정다빈 기자 melani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