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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위령기도] (6) 위령기도의 음악적 특성 2

강영애 (데레사·한국가톨릭 상장례음악연구소 연구실장)
입력일 2018-12-04 수정일 2018-12-04 발행일 2018-12-09 제 3123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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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감정 노래로 풀어내는 민족성 고스란히 담겨

「천주성교예규」에는 상사 때 소리를 높여 노래하는 모습이 조상의례에 부당한 것이 아니냐는 물음에 내 생각을 드높여 주께로 향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수렴하여 큰 원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노래방 열기와 위령기도

1990년대 초반에 도입된 노래방 문화의 열기는 대단했다. 노래문화는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닌 건국 이래부터 우리민족이 가지고 있는 특징 중 하나다. 우리민족은 기쁨이나 슬픔 등 내면의 감정을 노래로 풀어내는 경우가 많아 과거 농경문화에서도 노동요나 부녀요를 많이 불렀다.

초기 기도서인 예규에서는 위령기도를 노래로 하라고 규정하지만 악보가 없는 기도문을 노래로 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박해를 피해 숨어사는 신자들은 일 년 혹은 수년 만에 한 번씩 신부를 만날 수밖에 없었다. 교황이 선종하면 1년, 주교는 아홉 달, 신부는 여섯 달, 교우는 일주일, 죽은 부모는 평생을 생각하며 영혼을 위한 기도를 날마다 행하라고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거의 매일 위령기도를 행하게 됐다.

기도문에는 아침에 하는 조과와 저녁에 하는 만과가 있는데, 만과 때에 신자들이 모여 죽은 이를 위한 기도를 합송하게 된 것이다. 매일 반복되는 기도문은 자연스럽게 암송이 됐고, 그 합송가락은 공동이 아는 단순하면서도 익숙한 전통가락이었을 것이다. 이렇듯 신자들은 매일 저녁마다 모여 위령기도를 바치거나 장례가 나면 밤을 지새우면서 합송하는데, 그 과정에서 사제 없이 평신도들 스스로 계승해 가면서 지역마다 독특성을 지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노래가 보편화 된 것은 그 당시 향유방식이던 가창방식과 기도서의 규정, 그리고 노래를 좋아하는 민족성이 아우러져 빚어낸 결과로 볼 수 있다.

■ 노래로 표현된 부활에 대한 간절함

위령기도의 초기 기도서인 「천주성교예규」에는 상사 때 소리를 높여 노래하는 모습이 조상의례에 부당한 것 아니냐는 물음에 다음과 같은 답을 하고 있다. “그렇지 아니하니 이 비록 노래 없이 그 적경을 외워도 족하나 경을 노래하여 외옴이 그 연고에 있으니 하나는 노래하는 소리 더욱 내 생각을 들어 주께로 향하게 하고 더욱 내 마음을 수렴케 하고 더욱 우리 마음의 큰 원을 드러냄이요 둘은 거룩한 노래의 소리 만일 범대로 하고 정성된 마음으로 하면 능히 마귀를 쫓나니 대개 마귀 항상 근심하여 신락의 소리를 듣고 견뎌내지 못함이요 셋은 장사 때에 교우의 하는 소리는 또한 슬퍼하고 근심하는 소리니 그러나 과도히 못 할지라 대개 우리 근심은 바람 없는 무리의 근심과 다르니라.”(필자 임의로 고어를 현대어로 교정함)

큰소리로 노래하는 첫 번째 이유는 내 생각을 드높여 주께로 향하게 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수렴하여 큰 원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정성된 마음을 담은 거룩한 노래 소리는 호시탐탐 도사리고 있는 마귀를 쫓아낼 뿐 아니라, 슬픔과 근심의 가장 적절한 표현임이 셋째 이유다.

■ 악기 반주 없이 시김새로

이와 같은 위령기도는 정성스레 소리 높여 노래 부를수록 상승되므로, 악기 반주 없이 시김새를 넣어 부르게 되는 것이다. 위령기도에서 나타나는 시김새에는 한국적인 맛을 표현하는 것으로 음을 흔들어 주는 요성(搖聲), 밀어 올리는 추성(推聲), 흘러내리는 퇴성(退聲)이 있다. 이러한 시김새는 앞서 살펴본 정악과 같이 격렬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표현된다. 자연스러운 표현은 죽음에 대한 슬픔보다 부활에 대한 간절함에 비중을 둔 것으로써 민속악에서의 격렬함을 배제한 것이다.

밀어 올리는 추성은 낮은음에서 높은 음으로 올라갈 때 나타나고, 높은음에서 낮은음으로 내려갈 때는 미끄러지듯 흘려주게 된다. 이와 같은 현상은 현행 악보의 시작부분인 “제 영혼”, “깊은 구렁”에서 밀어 올리는 시김새로 나타나고, 아무런 표기가 없는 “제 소리를”, “감당 할 자”에서는 흘러내리는 시김새로 나타난다. 이러한 시김새는 지역별, 가창자별로 다양하게 표현되지만, 2003년 서양식 악보로 된 상장예식이 등장하면서 고유성을 잃어가고 있다.

■ 위령기도의 가창 방식

노래를 부르는 방법에는 선후창방식과 교환창방식이 있다. 현재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1969년 8월 로마에서 공포한 새 장례 예식서에 따라 자기 나라의 풍습에 맞게 예를 행하며, 선후창 방식으로 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나라도 성전에서 행하는 장례미사 및 일반 미사는 선후창으로 행하지만, 위령기도는 교환창으로 행하고 있다.

선후창은 한사람이 메기고 여러 사람이 받는, 메기고 받는 형식으로서, 목소리가 좋거나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이 선창자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과중한 노동의 형태나 현장 사정에 따라 나타나는데, 선창자는 즉흥적이면서도 개방적인 가사나 선율로 변화를 주지만, 후창자들은 가락이나 가사가 고정된 후렴만을 반복하게 된다. 이러한 가창방법은 선창자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위령기도는 초기 교회에서 행해지던 대창송(antiphonale) 방식을 받아들여, 부녀요에서 사용되던 교환창 방식으로 정착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교환창은 일이 비교적 수월하고 여유가 있을 때 부르던 가창방식으로서, 두 그룹은 노래의 가사를 모두 알아야하며, 연도와 같이 후렴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교환창 방식은 한국 실정에 맞는 공동 참여의식을 고취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위령기도는 혼자 묵상하듯이 조용히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으로 정성스레 노래로 하며, 여러 사람이 두 팀으로 나누어 상호 교환창으로 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강영애 (데레사·한국가톨릭 상장례음악연구소 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