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인권주일 르포] 인권 사각지대, 쪽방촌을 가다

우세민 기자
입력일 2018-12-04 수정일 2018-12-04 발행일 2018-12-09 제 3123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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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평 남짓 어두운 방에서 ‘인권’ 기대하기 힘들어
주택 아닌 데서 생활… 인권 보장 못 받는 삶
취약계층 위한 주거대책 마련이 근본 해결책
‘사랑방 마을 주민 협동회’ 조직해 서로 도와
신자들부터 인식 바꾸고 실질적 돌봄 나서야

서울 동자동 쪽방의 복도. 각 방문을 열면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서 사람이 살고 있다. 여기저기 곰팡이가 있어 주민들은 폐질환에 노출돼 있다.

지난달 서울 종로 고시원에서 불이 나 7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당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이번 참사를 계기로 주거취약계층에 대한 근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고시원이나 쪽방 등 비주택에 스프링클러 의무설치 소급 적용 검토와 안전 점검 강화 등의 대책만 내놓은 상태다. 만약 동일한 사건이 발생한다면, 이 같은 대책으로 참사를 막을 수 있을까? 이 문제는 제대로 된 주거권을 갖지 못한 비주택 거주자에 대한 인권 문제로도 연결된다.

대림 제2주간이자 인권 주일을 맞아, 주거취약계층이 모여 사는 서울 동자동 쪽방촌에서 그들의 인권 문제를 고민했다.

■ 고층빌딩에 가려진 인권 사각지대

“서울역과 그 주변 화려한 건물 바로 뒤에 우리 동네가 있습니다. 고층빌딩 뒤에 가려져 잘 안 보이지만, 이곳에 사람이 있습니다.”

서울 동자동 사랑방에서 만난 조두선(사랑방 마을 주민 협동회 조직이사)씨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씨는 2007년 기초수급자로 등록되면서 이곳 동자동으로 이사 왔다. 간간이 어린이통학차량 운행 등으로 입에 풀칠 정도는 했지만, 지난 1월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반신마비가 되어 일을 하기 어렵게 됐다.

“몸이 불편하다보니 화장실 사용이 가장 힘들죠. 또 외풍이 심해 아무리 껴입어도 추위를 피할 수 없습니다.”

조씨의 안내로 동자동 쪽방촌 거주자들의 살림살이를 몇 군데 둘러봤다. 동자동 쪽방촌에는 거주민만 1000명이 넘어, 전국 쪽방촌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쪽방이란 한국전쟁 이후 생긴 주거형태로, 여인숙 주인들이 손님을 더 받기 위해 방을 여러 개로 쪼개 장사를 한 것이 그 유래다. 수많은 인파들이 서울역 앞을 오가지만, 정작 인근에 사는 쪽방주민들에 대해서는 존재조차 모른다.

이곳 거주자들은 거동이 불편하거나 연로한 이들이 많았다. 대낮인데도 창문 하나 없이 깜깜한 한 평 남짓 공간에서 거주자들은 다리 한 번 편안하게 뻗지 못했고, 그 좁은 곳에서 취사까지 해결하고 있었다. 화장실과 세면장은 모두 공동으로 사용하는데, 온수는 기대할 수 없다. 난방은 심야전기로 전기판넬 공동난방을 한다. 밤 11시부터 아침 8시 정도는 그나마 온기를 느낄 수 있지만, 오히려 난방이 없는 낮 시간이 몹시 추위를 느낄 때다. 간이용 버너를 틀어 추위를 견디려하는 주민도 있는데, 화재로 번질 위험성이 커 보여 조마조마했다.

한 거주민은 “지난여름에는 찜통이라는 표현도 부족할 정도로 더웠는데, 몇 개월 사이 겨울이 왔다”며 “서울시에서 나무문을 철문으로 바꿔 달아주는 등 노력을 해주셨지만, 정작 불이 나면 이 무거운 철문을 뜨거워서 어떻게 열 수 있을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동네 계단이 너무 가파른 탓에 겨울에 넘어져 돌아가신 분도 있다”며 “길에 미끄러지거나, 추위를 못 견디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지난해에만 22분이 목숨을 잃었다”고 말했다.

서울역 인근 동자동 쪽방촌. 건물 너머로 고층빌딩이 보인다. 화려한 빌딩 숲에 가려진 외관만큼 쪽방주민들은 사람들의 관심에서도 멀어져 있다.

■ “매입임대주택 공급 정책 전면 재검토해야”

지난 10월 24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주택 이외의 거처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비주택 거주자는 수도권 19만 가구, 지방 18만 가구 등 모두 37만 가구로 추정됐다. 연구진은 이들 가운데 표본 6809가구에 대한 면접조사를 했는데, 그 결과 고시원 거주자가 15만1553가구로 41.0%를 차지했고, 판잣집이나 비닐하우스 거주자도 6601가구(1.8%)에 이르렀다. 최저주거기준(1인 기준 14㎡)에 미달하는 가구 비율은 49.2%에 달했고, 그 중 ‘쪽방’ 가구 비율은 20.1%(7만 가구)였다. 평균 월세는 32만8000원으로, 고시원·고시텔(33만4000원) 월세 부담이 가장 크고, 판잣집·비닐하우스(22만2000원) 월세가 가장 낮았다. 주거생활의 어려움을 꼽으라는 질문에 응답자들은 열악한 주거환경(42.3%), 열악한 시설(40.6%), 외로움과 고립감(27.8%), 주거비 부담(26.5%) 순으로 응답했다.

고시원 화재 이후 주거취약계층에 대한 주거지원 확대를 외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녹록지 않다.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위원장 나승구 신부)를 비롯한 주거권 관련 시민단체들은 지난 11월 21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시원 화재 참사에도 거꾸로 가는 서울시 매입임대주택 공급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에서 이들은 “고시원, 쪽방 등 밀폐된 공간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빈곤 1인 가구의 경우는 아무리 안전을 강화해도 결코 안전해질 수 없다”며 “결국 가난한 취약계층의 주거대책 마련만이 재발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해결방안”이라고 밝혔다.

한 주민이 거주 중인 쪽방.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서 취사를 해결해야 하며, 대낮에도 전등 없이는 지내기 어렵다.

■ 공동체 정신으로 자구책 마련

빛이 들어오지 않는 쪽방처럼 이곳 주민들에게도 희망은 보이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들은 나름의 공동체를 이루며 서로를 꼭 껴안아주고 있었다.

조두선씨는 요즘 동자동 쪽방 주민들이 서로 친교를 이루면서, 이웃끼리 옆집 문을 두드리고 열어 안부를 묻는 분위기가 정착됐다고 했다. 비록 인권이 침해되는 열악한 환경에서 살지만, 이들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공동체를 하나의 대안으로 스스로 터득한 것이다. 조씨는 “예전에는 옆에 누가 사는지도 몰랐는데, 요즘은 옆에 아픈 이웃이 있으면 병원에 데려가고, 식사는 제대로 하는지 관심을 주면서 서로에게 힘이 돼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동자동의 공동체 정신은 ‘사랑방 마을 주민 협동회’(이사장 유영기)로 구체화됐다. 주민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주는 관계로 성장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신뢰를 바탕으로 공동체가 형성된 것이다. 특히 이들은 스스로 저축도 하고, 대출도 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려 노력한다.

유영기 이사장은 “정부에서 갈 데 없는 사람들을 돕는다고 돈을 내놓지만, 그것만으로 가난한 이들이 생계를 유지하기는 힘들다”며 “차라리 건물 하나 마련해주거나 임대주택을 만들어 함께 모여살 수 있게끔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두선씨도 “우리가 원하는 건 그저 살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라며 “기본적인 생계유지와 인권에 따라 살 곳을 마련해달라는 저희의 외침을 들어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위원장 나승구 신부는 “주택이 아닌 곳에 살 수밖에 없는 그 자체로도 인권을 보장 받지 못하는 것”이라며 극소수가 부를 독점하는 구조가 계속된다면 도시빈민들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나 신부는 이어 “가톨릭신자들부터 인식이 변화된다면 주거빈민 문제 해결이 빨라질 것”이라며 “신자들이 시야를 넓혀 가난한 이들을 실질적으로 돌보는 데 지금이라도 앞장서야 한다”고 당부했다.

우세민 기자 semin@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