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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대북 제재와 비핵화 인센티브 / 이원영

이원영 (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입력일 2018-12-04 수정일 2018-12-04 발행일 2018-12-09 제 3123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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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30일, 드디어 남북 철도 연결을 위한 공동 조사작업이 시작됐다. 이날 도라산역에서 경의선의 개성~신의주 약 400㎞ 구간과 동해선의 금강산~두만강 약 800㎞ 구간을 총 18일간에 걸쳐 운행할 예정으로 열차가 출발했다. 이 조사 작업은 UN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원회의 제재 예외 대상 승인과 미국의 독자 제재 예외 대상 승인을 받아 가능하게 됐으며, UN군사령부에도 48시간 전에 통보해 전혀 문제없이 진행될 수 있었다고 한다.

철도 공동 조사작업의 시작을 보면서 2000년대 중반에 금강산에 갔을 때, 차고 거센 바람에 애를 먹으면서, 이정도 바람이라면 풍력발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지만 현재 북한에 풍력발전을 지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술적인 문제는 차치하고 UN의 제재와 국제사회의 국가별 제재 때문이다. 특히 미국의 제재는 UN의 제재보다 훨씬 촘촘하며, 대통령의 행정명령과 의회에서 제정한 법률로 매우 엄격하게 시행되고 있다.

그런데 국제정치에서 사용되는 ‘경제 제재’(economic sanction)는 대상 국가에게 특정한 행위를 금지하거나 강요하는 강력한 무기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북한의 비핵화 프로세스는 하루 이틀에 끝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만일 대북 제재의 부분적, 단계적 해제가 비핵화 프로세스를 보다 신속하게 진행시키기 위한 인센티브로 작동할 수 있다면 검토해 볼 충분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북한이 진행해야 하는 비핵화 과정은 핵시설 신고 및 사찰 리스트 작성, 국제기구의 검증 및 핵시설 폐기 등이다. 대부분 일단 진행되면 되돌릴 수 없는 것들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이 기만하지 않을까에 대한 우려가 있지만, 바로 그 때문에 국제기구의 사찰이 중요한 것이다. 반면에 미국과 국제사회의 부분적, 단계적 제재 해제는 북한의 태도에 따라 언제든지 재개할 수 있는 일들이다.

따라서 북한의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진행에 상응해, 되돌릴 수 있는 제재 해제의 짝을 찾아 단계적으로 서로 주고받는 것을 협상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현재와 같은 북미 간의 협상 교착 상태를 극복하고, 미국이 주장하는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ID)로 나아가기 위해 검토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럴 수 있어야 제재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비핵화를 위한 수단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닐까?

만일 미국이 북한을 여전히 ‘악의 축’이라고 믿고 있어서 검토조차 할 수 없다면 링컨 대통령이 가장 좋아했다는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굴복시키십시오”(로마 12,17; 12,21)라는 성경 말씀을 들려주고 싶다.

이원영 (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