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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위령기도] (5) 위령기도의 음악적 특성 1

강영애 (데레사·한국가톨릭 상장례음악연구소 연구실장)
입력일 2018-11-27 수정일 2018-11-27 발행일 2018-12-02 제 3122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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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가락에 기도문 얹어 연도만의 독특한 선율 만들어

서양음악의 영향을 받은 연도는 200여 년간 이 땅에 뿌리를 내리면서 한국의 전통음악과 문화를 흡수한 연도만의 독특한 선율구조를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2014년도 10월에 열린 수원교구 성남지구 연도대회.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위령기도의 음악적 구성

위령기도(연도)는 불규칙적이고 긴 기도문으로 구성되었으며, 여러 사람들이 제창방식으로 노래하는 경우가 보편적이다. 위령기도의 노래는 기도문의 의미 전달이 확실하도록 단순하면서도 반복된 가락으로 되어있다. 위령기도 중 시편 129편을 예로 들면, “깊은 구렁 속에서 주님께 부르짖사오니, 주님 제 소리를 들어 주소서”는 1가락, “제가 비는 소리를 귀여겨 들으소서”는 2가락이 된다. 기도문이 길면 1가락처럼 부르고 기도문이 짧으면 2가락에 얹어 부르게 된다. 3가락은 ‘제소리를’, ‘감당할 자’와 같은 중간가락으로 성인호칭기도문에서 주로 사용된다. 이러한 세 가지의 기본가락이 시편, 성인호칭기도, 찬미가 등에서 약간의 변화만 준채 무한 반복되는 단순한 노래가 연도인 것이다.

가락은 길이와 높이로 구분되는데, 길이는 1음절형이 대부분 긴 음표(長 ♩, 2박), 2음절형은 짧고 긴 음표(단장 ♪♩, 3박)를 기본으로 한다. 2음절형은 4음절형, 6음절형에서 반복되는데, 이는 한국 사람에게 친숙한 자장가의 리듬을 닮고 있다. 자장가의 리듬은 안정감을 주게 되는데 현세의 고단한 여정을 끝내고 주님의 나라에서 편안한 안식을 취하기를 바라는 염원에서 선택된 듯싶다.

- 전통음악에 반영된 선조들의 죽음관, 그리고 위령기도

신앙 선조들의 죽음관에는 이별에서 느끼는 슬픔과 파스카의 기쁨이 공존한다. 죽은 사람에 대한 슬픔과 기도하는 당사자의 회개가 부활에 대한 기대 및 공동체의 배려와 융합되어 아름다운 노래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슬픔을 표현하지만, 전통음악의 정악과 같이 격렬하지 않고 편안한 느낌을 주게 된다.

전통음악에는 민속악과 정악이 있다. 민속악은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모두 표출하는 반면 정악은 일부 감정을 내면에서 정화시킨 후 내보내게 된다. 「삼국사기」 진흥왕편에 전하는 기록에서 정악과 민속악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가야의 음악가인 우륵은 가야가 멸망하자 가야금을 들고 신라로 귀화하게 된다. 신라 임금은 그에게 세 명의 제자를 보내어 가르치게 했고, 우륵은 본인이 만들었던 12곡으로 제자들을 지도하게 된다. 12곡을 다 배운 제자들은 ‘이것은 번다하고 또 음란해서 우아하고 바르다고 할 수 없다’ 하고, 5곡으로 요약하게 된다. 우륵은 몹시 화를 냈지만 제자들이 연주하는 다섯 곡을 듣고 눈물을 흘리면서 ‘즐겁지만 넘치지 않고(樂而不流), 애절하지만 비통하지 않으니(哀而不悲), 가히 바르다고 할 수 있다. 임금님께도 들려드려라’ 하였다. 그 음악을 들은 임금 역시 감탄하며 대악으로 삼았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우륵이 만든 12곡은 가야의 흥청거리던 민속악으로 볼 수 있고, 제자들이 다듬은 5곡은 신라의 절제된 정악으로 풀이된다. 정악은 이후 통일신라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로 이어지는 바르고 우아한 음악으로 정착 된다.

몇몇 사람들은 연도가 민속악인 상여소리와 비슷하다고 하지만, 애절한 느낌만 비슷할 뿐 정악의 시조나 독서성에 더 가까움을 알 수 있다. 이는 연도가 생겨나게 된 배경과 종교관에서 그 원인이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제사 금지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선현들은 로마교회법을 거역하지 않으면서도 유교의 중심인 효를 지킬 수 있는 새로운 의식으로서 장례와 제사를 행하게 되었다.

- 연도의 독특한 선율구조 : 전통음악과의 조화

외교인의 예식을 따르지 말라는 예규의 규정에 따라 전통 상례에서 행하는 상여소리나 곡의 격렬함보다는 양반들 사이에 유행하던 독서성과 시조(정악)의 은근함을 따르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악보가 아닌 기도문을 그레고리오성가의 생소한 가락에 얹어 부르기 보다는 평소 익숙한 자장가나 독서성, 시조가락에 응용하여 연도만의 고유한 가락을 만들어 내게 된 것이다. 또한 죽음이 세상의 끝이 아니라 하느님 집인 본향으로 간다는 믿음 때문에 비통하거나 원통할 정도의 처절함으로 표현되진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서양음악의 영향을 받은 연도는 200여 년간 이 땅에 뿌리를 내리면서 한국의 전통음악과 문화를 흡수한 연도만의 독특한 선율구조를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

음계는 계면조이고, 메나리토리와 유사하지만, 상여소리나 판소리의 시김새와는 전혀 다른 정악의 특징이 나타난다. 이는 그레고리오 성가나 장례노래 속의 후렴 및 한문의 독서성을 정악의 바른 마음과 생각, 바른 길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강영애 (데레사·한국가톨릭 상장례음악연구소 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