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하느님은 알고 계신다 / 이계순

이계순 (헬레나) 시인
입력일 2018-11-27 수정일 2018-11-27 발행일 2018-12-02 제 3122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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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끝자락에 성탄절이 다가오면 고교시절 성탄절 추억으로 가슴이 두근거린다.

당시 수도여자고등학교 교장 방순경 선생님은 교장 사택을 개조해 기숙사를 만들어주셨는데 작지만 실속 있는 기숙사로 인기가 대단했다. 기숙사생은 50여 명, 사감 선생님 두 분이 사랑으로 보살펴 주셨다.

그러다 가톨릭신자인 장선숙 선생님께서 저녁식사 후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 성탄 자정 미사에 갈 사람은 “함께 가자”고 권하셨다. 나는 신자는 아니었지만, 호기심에 끌려 참례하기로 했다. 처음으로 가 본 명동대성당은 뭐라 표현할 수 없었다. 분위기에 압도돼 정신이 멍 해졌다. 추운 겨울밤 자정인데도 넓은 성당을 가득 메운 사람들, 그들은 모두 환한 표정을 짓고 즐거워하며 들떠 있었다. 미사가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나였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영성체하는 모습, 성가를 부르는 모습 등 그 모든 것이 놀랍고 성스러워 보였다.

그 후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으로 봉직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해 세 아이의 엄마가 됐다. 남편은 대학시절 세례를 받았고 군복무를 하는 중에도 열심한 신자였다. 불현듯 고교 시절 호기심으로 따라갔던 명동대성당 성탄 자정 미사가 떠올랐다. 너무 고맙고 감사했다.

내가 세례를 받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1977년 부활 대축일 때 세 아이들과 함께 세례를 받았다. 그때의 감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영세 후 나의 생활은 신앙이 우선인 삶이었다. 반모임, 레지오마리애 등에서 활동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반모임 반장, 쁘레시디움 단장으로도 책임이 무거워져 갔다.

본당에서 분가할 새 성당 건립기금 마련을 위한 다양한 모금 행사가 있었다. 우리 반에서는 참깨를 직접 짠 참기름을 교우들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이웃에도 홍보해 판매했다.

한번은 구매를 원하는 집에 당시 초등학교 학생인 막내딸에게 참기름을 배달 시켰다. 잠시 후 돌아온 막내가 “내가 참기름 장수 딸이냐”며 다시는 심부름을 하지 않겠다고 짜증을 냈다. 그 집이 바로 자기반 남학생의 집이였던 것이다. 이제는 그 딸애가 어엿한 변호사가 됐다.

쁘레시디움 단원 한 사람의 남편이 갑자기 작고해 단원들은 본당 장례예식 참례 후 장지 수행을 했다. 장지 예식이 끝나갈 무렵, 갑자기 망자의 동생 친척 몇 분이 큰소리로 “왜 장례를 천주교 식으로 하느냐”며 미망인에게 항의했다. 미망인에게는 연로하신 모친만 계셨다. 당황한 미망인은 어쩔 바를 모르고 있었고, 우리도 지켜보는 수밖에는 달리 대책이 없었다. 단장의 책무가 무겁고 중요함을 새삼 느끼며 나는 그 동생 분에게 “저는 미망인과는 같은 본당 신자인데 이집 가족들도 잘 알고 있어요. 고인이 생전에 성당에 다니셨고 아주 착실한 신자셨어요. 온 가족이 신자지요. 그러니 장례를 천주교 식으로 치루는 것이 옳지 않겠나요. 고인을 위해서라도 이해해주세요”라고 설명 아닌 간청을 했다. 다행히 장례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고, “하느님 감사”를 마음속으로 외쳤다.

지역부장 사목위원으로 봉사를 계속했다. 이제 아이들도 각자 자기의 가정을 꾸리고 착하게 살고 있다. 뒤돌아보면 하느님이 그때 명동대성당 성탄 자정미사에 저를 불러 주셨음을 알겠다. 그것이 사랑이고, 은총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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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순 (헬레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