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설] 방황하는 청소년 감싸 안자

입력일 2018-11-27 수정일 2018-11-27 발행일 2018-12-02 제 3122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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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이 세상을 놀라게 한다. 아파트에서 추락해 숨진 중학생과 그를 뛰어내리게 만든 10대의 집단폭행, 여중생 집단강간사건 등 언론은 연일 자극적 단어들로 청소년들을 잔혹한 범죄 집단으로 여론몰이 하고 있다. 급기야 몇몇 국회의원들은 소년법 처벌을 강화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물론 10대들의 강력범죄가 주목받을 때마다 벌어지는 현상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분위기가 사뭇 심상치 않다.

과연 청소년의 강력범죄가 순수하게 그들 잘못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청소년 범죄 보호처분을 받은 아이들을 돌보는 서울 대림동 살레시오청소년센터의 수사들은 그들을 ‘사랑해야 할 어린양’이라고 밝힌다. 센터장 김선오 신부는 “그 어떤 어른도 이 아이들을 사랑해주지 않았으며, 안정감을 주지도 못했다”며 “하느님의 눈에는 이 아이들도 사랑하는 자녀”라고 말한다.

사랑의 부재로 비뚤어진 청소년들에게 그저 정의의 잣대만 들이댄다면, 그들에게 회개의 기회는 있을까? 하느님은 당신 자비로 누구도 저버리지 않으신다. 하느님은 인간이 회개하고 새롭게 태어날 의지가 있다면 누구에게나 새로운 기회를 주신다. 물론 그들의 죄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자비는 죄가 아니라 죄인을 의롭게 한다. 우리 믿음의 근본이 되는 성경의 핵심주제가 ‘사랑’과 ‘자비’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 시기, 단죄보다는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의 변화를 기다리는 자비로운 인내심이 필요하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져다주시는 기쁨에서 배제된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복음의 기쁨」 3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