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환경

[생태칼럼] (35) 본다는 것

박그림 (아우구스티노)rn녹색연합·‘설악산국립공원 지키기 국민행동’ 공동대표
입력일 2018-11-20 수정일 2018-11-20 발행일 2018-11-25 제 3121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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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바람이 불고 낙엽이 뒹구는 초겨울로 들어서면서 발길은 뜸해지고 설악산은 고요와 정적 속으로 깊이 빠져들고 있다. 시월 내내 수많은 탐방객들로 북적이던 소공원 일대의 고요가 오히려 낯설게 느껴질 만큼 설악산은 가으내 밀려드는 탐방객으로 몸살을 앓았다. 설악산의 가을은 와보지 않고는 못 견딜 만큼 아름답다고 하지만 너무 많은 탐방객이 가을 한 달 동안 집중적으로 몰리면서 끊임없이 상처를 남기는 슬픈 가을이기도 하다.

인터넷 시대로 들어서면서 자연조차도 쉽고 빠르게 즐기려는 듯한 요즈음 정말 자연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양양 고속도로가 뚫리고 많은 이들에게 하루 관광으로 바뀐 설악산에서 발걸음이 바쁠 수밖에 없겠지만 아름다운 풍경을 보기 위해서 본다는 것은 무엇인지 한 번쯤은 따져보아야 하지 않을까. 나를 스쳐가는 것들이 보이지만 그것은 보려고 생각하지 않아도 눈에 비치는 것일 뿐 보는 것은 아니다.

산을 오르면서 정상을 향해 빠르게 오르다 보면 별로 기억에 남는 것이 없는 것은 오르는 동안 보였던 것들은 보이었을 뿐 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느린 걸음으로 풍경으로 들어가면 온몸으로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되지만 빠른 걸음으로 걷다 보면 자연은 스쳐 갈 뿐 내게 들어오지 않는다. 보이는 것을 보아야 하고 더 나아가 눈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느린 걸음으로 자연에 다가가 오감을 통해서 온몸으로 잘 보아야 한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들이 새롭게 느껴지고 자연의 경이로움 속으로 깊이 빠져들 때 잘 보고 있는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스치는 관계가 아니라 깊이 바라볼 때 그 사람의 새로운 모습을 알게 되는 것과 같다. 삶의 바탕을 이루는 자연과의 관계에서도 잘 보려면 시간과 정성이 담겨야 하고 담긴 만큼 주어지는 것이 자연의 흐름이기에 더욱 잘 보아야 한다. 나뭇잎을 다 털어낸 빈 가지만 남은 나무 앞에 서서 가볍다는 것은 무엇인가? 나뭇가지의 뒤엉킨 듯 가지런함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를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잘 보려고 다가섰기 때문이다.

느린 걸음으로 다가서고, 멈추어서 바라보고, 생각하며 본다는 것은 몰랐던 것들을 일깨워 주고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어 준다. 나무마다 다른 색깔로 아름답게 꾸미고 그 나무들이 모여 더 아름다운 숲을 만들어내는 가을은 그래서 더 잘 보아야 하는 계절인지도 모르겠다. ‘보인다’에서 ‘본다’는 것으로, ‘본다’에서 ‘잘 본다’는 것으로 바뀔 때 삶도 바뀔 것이다. 우리들도 자연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작은 생명이기 때문이다.

박그림 (아우구스티노)rn녹색연합·‘설악산국립공원 지키기 국민행동’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