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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주간 기획] 청년들이 성서모임에 가는 이유

성슬기 기자
입력일 2018-11-20 수정일 2018-11-23 발행일 2018-11-25 제 3121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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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고 고된 세상살이 가운데
하느님을 느끼고 만나는 시간
함께 성경 묵상하며 위로 얻어
 주님과 나를 잇는 ‘끈’이기 때문이죠

“삼 포 세대 오 포 세대/ 그럼 난 육포가 좋으니까 육 포 세대”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노래처럼 요즘 청년들은 연애, 결혼, 출산 등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아간다. 삶이 팍팍하다 보니, 때론 신앙도 버겁게 느껴진다.

이런 청년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고, 그들을 신앙과 연결해주는 모임이 있다. ‘말씀으로 함께 모인 젊은이의 교회’를 이루기 위해 각 교구마다 활발히 열리는 청년성서모임들이다. 서울에서만 해마다 청년성서모임에 5000여 명의 청년들이 참여한다.

성경을 생활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성서 주간(11월 25일~12월 1일)을 맞아 서울과 대구 등 청년들이 성서모임에 가는 이유를 알아봤다.

■ 쉼과 위로

수많은 고민거리와 걱정들로 밤잠을 설치는 청년들에게 성서모임은 큰 위로가 되고 있다. 그들은 성경 속에서 삶에 대한 답을 찾고 있었다.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 청년성서모임 담당 허홍석 신부(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는 “청년들은 성경을 통해 ‘삶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에게 위로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허 신부는 청년들에게 성서모임은 삶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살아내기 위해 잠시 머무는 곳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세례 받은 뒤 8년 동안 성서모임을 이어 가고 있는 배대한(인노첸시오)씨는 힘들고 지칠 때마다 성경을 편다. 성경에서 위로를 얻기 때문이다. 그는 “성서모임을 하며 말씀에 힘이 있다는 것을 체험했다”며 “청년성서모임을 하며 세상에서 얻지 못하는 위로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성서모임을 ‘고속도로 휴게소’에 비유한 배창형(안셀모)씨는 “성서모임은 경쟁이 과열된 사회 속에서 버티는 힘이 된다”며 “서로에게도 힘이 되고, 나 자신을 찾아가는 길이 되어주고 있다”고 밝혔다.

성서모임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나눔’이다. 모임별로 6~8명의 그룹원이 봉사자와 함께 모여 성경을 읽고 묵상한다. 또 성경에 대한 지식은 물론 성경을 나의 삶과 관련지어 생각하고 묵상한 것을 나누며 서로에게 위로를 얻는다.

6년째 가톨릭 청년성서모임을 담당하고 있는 최광희 신부(서울대교구)는 “나눔에서 굉장히 많은 치유가 일어난다”며 “현대사회에서 청년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기 쉽지 않고, 공감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나눔에서는 보통 때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눈다”며 “나눔의 내용은 비밀임은 물론, 평가나 조언, 판단을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가톨릭 청년성서모임 센터에서 그룹공부를 하고 있는 청년들. 함께 성경을 읽고 묵상한 것을 나누며 위로를 얻는다.

■ 신앙의 연결고리

성서모임은 청년들의 신앙생활에 ‘터닝포인트’(전환점)가 되기도 한다. 냉담한 청년들을 다시 하느님의 품으로 불러들이기도 하고, 무의식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 성당에 왔다 갔다만 하는 이들의 신앙에 불꽃을 지피기도 한다. 말씀(성경)은 우리 신앙의 가장 큰 기둥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15년 동안 냉담을 했던 박세화(크리스티나)씨는 “성서모임은 이제 생활이 됐다”고 고백했다. 한 때는 종교에 회의적이기도 했고, 미사를 나가도 대중 속에 숨고 싶어 큰 성당들만 찾아다니기도 했다는 박씨. 하지만 이제는 성서모임을 하며 날마다 하느님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한다. 그는 “성경을 읽지 않으면 하느님과 멀어지는 느낌이 든다”며 “날마다 노력해야 제 곁에 계신 하느님이 더 잘 느껴진다”고 밝혔다.

하지윤(엘리사벳)씨도 드문드문 성당을 드나들던 냉담교우 중 하나였다. 하지만 성서모임을 꾸준히 하며 스스로 영적으로 성숙해짐을 느꼈다.

“성경 구절 중에 믿음이 안 가는 부분도 있었어요. 이성적으로만 판단하고,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거죠. 하지만 신앙을 쉽게 포기할 수는 없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성서모임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꾸준히 성경 공부를 하고 연수를 다녀오면서 신앙에 대해 깊게 이해하게 됐어요.”

바쁜 의대 생활 중에도 교내 성서모임으로 신앙을 이어간 황지은(체칠리아)씨도 “성서모임은 자칫 세속의 가치에 휩쓸리기 쉬운 환경에서 신앙의 끈을 놓지 않도록 도와줬다”고 밝혔다.

11월 18일 ‘가톨릭 청년성서모임 만남의 잔치’에서 정순택 주교가 봉사자로 파견된 청년들에게 ‘말씀의 봉사자’ 배지를 수여하고 있다.

■ 하느님 현존 체험

정순택 주교(주교회의 청소년사목위원회 위원장)는 11월 18일 봉헌한 ‘가톨릭 청년성서모임 만남의 잔치’ 2부 미사 강론에서 “청년들이 말씀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실제로 많은 청년들이 정 주교의 말처럼 성경을 통해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고 있다. 또 성서모임에서 나눈 내용에 따라 한 주를 살아가며, 삶이 달라졌다는 이들도 있다.

대구대교구 파스카 청년성서모임 백승지(세라피아) 대표에게 성경은 살아계신 하느님 그 자체다. 성서모임을 통해 살아계신 하느님을 만난 그는 “성서모임은 우리 안에 살아계신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도록 눈을 뜨게 해줬다”며 “말씀을 통해 저를 이끌어주시고 지혜를 주신다”고 말했다.

성서모임 센터 봉사자 임동균(시몬)씨는 그룹공부를 하는 서로의 모습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한다. 본당 활동을 하며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로 성서모임을 시작한 그는 “신자가 신앙 에너지를 채울 수 있는 방법은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이라며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지켜주고 계심을 느낀다”고 밝혔다.

성서모임은 영화배우 양주호(베드로)씨의 삶을 바꾸어 놓기도 했다. 그는 “성서모임을 하며 하느님께서 저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느낀다”며 “삶에 대한 불만이 많았는데, 매일 감사한 일을 하나씩 찾게 되면서 삶이 전보다 풍요로워졌다”고 전했다.

최광희 신부는 “신앙의 원천은 성사와 말씀”이라며 “말씀 안에서 신앙을 바라보고 체험할 수 있으면, 스스로의 약함마저 인정하고 보듬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나를 바라보고 계신 당신(하느님)의 시선과 마음을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신앙 안에 머무르면 아픔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