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에세이] 창조를 이어가게 하셨으니 / 김희명

김희명 (요세피나·제2대리구 분당성마태오본당)
입력일 2018-11-20 수정일 2018-11-20 발행일 2018-11-25 제 3121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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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조그맣고 책을 좋아하고 앞마당에 꽃을 예쁘게 키웠던 할머니는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노래를 자주 불렀습니다. 동학농민운동을 중학교 때 배우면서 할머니의 노래는 ‘역사’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할머니는 마당에 핀 꽃을 꽃다발로 만들어주며 선생님께 갖다 드리라고 했습니다. 앞마당의 꽃밭과 할머니, 꽃다발, 그리고 부끄러워서 이일을 어쩌지라는 난처한 마음이 한 장면의 사진처럼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5월이 되면 빨간 장미꽃이 집 마당에 피었습니다. 늦잠 자는 대학생 막내딸의 침대 머리맡에 아버지는 빨간 장미를 유리병에 담아 놓아주었습니다. 동네 산에 산책을 다녀오는 길에는 산에 핀 들꽃을 장미꽃처럼 막내딸의 방에 놓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책을 좋아하는 할머니처럼 책을 좋아해 늘 책을 읽었습니다.

꽃다발을 만들어주었던 할머니 나이에는 아직 못 미치지만, 딸의 방에 장미꽃을 꽂아주던 아버지의 나이와는 거의 비슷해진 막내딸은 이제 꽃집에서 장미를 삽니다. 장미를 사서 성모님 옆에 놓습니다. 할머니의 꽃다발처럼, 아버지의 장미꽃처럼, 할머니의 마음과 아버지의 마음을 담아 성모님께 장미를 드립니다. 그리고 할머니가 책을 읽듯이, 아버지가 책을 읽듯이 저도 책을 읽습니다.

제가 할머니와 아버지처럼 하느님 곁으로 가게 되고, 저의 아이 셋이 지금의 제 나이가 되었을 때, 아이들도 증조할머니와 할아버지와 엄마의 마음을 담아 성모님께 장미꽃을 드릴 것입니다. 그리고 증조할머니처럼 할아버지처럼 엄마처럼 책을 읽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모두 유한한 존재이지만, 하느님 안에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열려있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저희에게 귀한 자녀를 주시어 창조를 이어가게 하셨으니 주님의 사랑으로 자녀를 길러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소서”

‘자녀를 위한 기도’를 드리며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합니다.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김희명 (요세피나·제2대리구 분당성마태오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