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에세이] 아버지와 포마드 / 김희명

김희명 (요세피나·제2대리구 분당성마태오본당)
입력일 2018-11-13 수정일 2018-11-14 발행일 2018-11-18 제 3120호 3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감색양복을 입고 포마드 바른 젊은 아버지는 늘 오후 5시30분이면 퇴근을 했습니다. 퇴근하는 아버지 손에는 언제나 캐러멜과 센베과자(전병)가 있었습니다. 월말에는 「소년중앙」을 사 왔습니다. 올망졸망한 삼남매가 방학을 하면 낮에 꼭 집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아버지가 지금 은행에서 TV로 보고 있으니까 싸우지 말고 재밌게 놀고 있어라”라는 아버지의 전화는 아버지가 옆에 있는 것처럼 든든했습니다.

주일 점심은 버스정류장 앞에 있는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사 먹고, 어린 삼남매와 포마드 바른 젊은 아버지는 은좌극장에서 허장강이 나오는 영화를 봤습니다. 세상에서 모르는 것이 하나도 없는 젊은 아버지는 무엇을 질문해도 대답이 척척 나왔습니다.

햇살이 방안까지 들어와 있던 어느 날 오후에 젊은 아버지는 ‘라노미아’를 듣고 있고, 젊은 아버지 곁에서 엘피판 겉표지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림을 그리면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아버지 옆에서는 해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이든 해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아버지 앞에서는.

2018년 11월은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고, 세상에서 감색양복이 제일 잘 어울리고, 세상에서 포마드 바른 모습이 제일 멋진 아버지가 떠나시고, 두 번째 맞는 위령 성월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아버지가 키우던 푸들 강아지 ‘별이’를 데리고 와서 키우고 있습니다. “별이야, 별이야, 할아버지는 어디 계셔?”라고 별이에게 한 번씩 묻습니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별이에게 다시 말합니다.

“할아버지는 우리들 마음속에 계셔”

젊은 아버지가 어린 삼남매만을 바라봤듯이 이제 나이들은 삼남매가 가시는 아버지만을 바라보며 배웅했습니다. 그리고 본당의 선종봉사회와 연령회, 교우분들이 돌아가신 아버지가 누워계시는 그 공간과 시간을 한 치의 틈도 없이 기도로 채워줬습니다.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영혼을 위해 본당 공동체가 함께 드려주었던 기도는 일치의 기쁨을 알게 해줬습니다. 본당 공동체의 사랑으로 아버지는 평화롭게 가셨습니다.

위령 성월입니다. 세상을 떠난 모든 영혼을 위해 기도합니다.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김희명 (요세피나·제2대리구 분당성마태오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