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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국제학술대회 - 참가자 인터뷰

정다빈 기자
입력일 2018-11-13 수정일 2018-11-14 발행일 2018-11-18 제 3120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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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위한 가톨릭의 역할’을 모색하기 위한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제2회 국제학술대회에는 학자, 외교관, 사제, 활동가로 각자의 자리에서 평화를 향한 신념으로 일하는 평화의 사도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제1회의 발제자 메리앤 쿠시마노 러브 교수, 제2회의 발제자 필립 맥더나 전 대사, 전 미국주교회의 의장 윌리엄 스카일스타드 주교와 버지니아 루 패리스 미국주교회의 국제정의평화위원회 위원을 만나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제언을 들어봤다.

■ 메리앤 쿠시마노 러브 (아메리카가톨릭대학교 교수)

“정의와 평화는 반드시 함께 가야합니다”

정의 없이 화해 추구하면 폭력과 갈등 다시 오기 마련

힘들고 오래 걸리더라도 ‘정의로운 평화’의 원칙 중요

“때때로 정의와 평화의 문제는 충돌합니다. 그러나 그 둘은 함께 가야 합니다. 평화를 위해 정의의 문제를 포기할 때 폭력은 반드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메리앤 쿠시마노 러브 교수는 고통스러운 과거를 덮어두고 피해자들의 회복이 아닌 당장의 이해관계를 우선할 때, 잠시 모습을 감춘 것 같았던 폭력과 갈등은 언젠가는 우리를 다시 찾아오기 마련이라고 설명한다. 지도자들의 합의에 의한 평화, 정의의 문제를 묻지 않고 책임 규명을 덮어두는 화해가 위험한 까닭이며 ‘정의로운 평화’가 중요한 이유다.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아메리카가톨릭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 교수로 재직 중인 러브 교수는 지난 20년간 세계의 교회 기관과 종교인들이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과 이런 행동을 이끄는 종교적 상상력과 아이디어에 대해 연구했다.

러브 교수는 특히 미국의 인종 갈등, 콜롬비아 내전, 독일의 분단과 통일 과정에서 이뤄진 화해를 위한 노력과 실패에 대해 연구해 왔다. 그리고 이 과정들이 ‘정의로운 평화’의 관점에서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냉전 시대에 이뤄졌던 군축은 더 높은 수준의 평화를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이는 정의로운 평화의 원칙과 실천 관행이 적용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러브 교수가 ‘정의로운 평화’를 위해 가장 강조하는 것은 ‘참여’다. 정의로운 평화의 원칙에서는 국가 및 분쟁의 당사자들을 포함하는 이해관계자들의 폭넓은 참여가 필요하다. 평화를 깨뜨린 자들의 참여, 갈등으로 소외당하고 억압받았던 사람들을 포함한 모두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참여는 지난한 인내와 긴 시간이 필요하다.

한반도의 평화 또한 기대보다 훨씬 힘들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과정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정의’와 ‘평화’를 동시에 도모하기 위해 한국교회는 이미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말한다.

“평화를 위한 여정에서 종교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습니다. 평화 교육, 기억과 영혼의 치유를 통한 관계 회복은 분단이 나은 상처를 극복하고 한반도가 정의로운 평화를 추구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 필립 맥더나 (전(前) 아일랜드 대사)

“평화는 갑자기 생겨나지 않습니다”

평화로운 새 시대 열기 위해 용기 갖고 꾸준히 노력해야

교황 방북, 신중한 준비 필요

소외된 변방 찾는 용기 믿어

필립 맥더나 전(前) 아일랜드 대사는 유럽연합의 여러 기구에서 일하며 다자간 외교협상을 이끈 외교관이다. 1994년에서 1999년까지는 영국 주재 아일랜드대사관에서 근무하며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사이의 분쟁을 종식했던 ‘성금요일 협정’(Good Friday Agreement) 체결을 위해 일했다. 평화를 위한 대화와 협력의 과정에 폭넓은 경험을 가진 맥더나 대사에게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적·외교적 상황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맥더나 대사는 종교와 민족, 역사적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던 아일랜드의 경우와 한국은 문제의 결이 다소 다르지만, 평화를 위한 원칙은 동일하다고 설명했다.

“평화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평화는 갑자기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용기를 갖고 지속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평화를 위한 용기, 화해의 여정을 시작하기 위한 용기를 충분히 갖고 계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단합이 분쟁에 우선하며 현실이 관념보다 중요하고 전체가 부분보다 중요하다’는 분쟁을 극복하기 위한 원칙은 한반도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앙인이자 전직 외교관으로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 가능성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맥더나 대사는 “교황님께서 가장 약하고 가장 소외당한 형제들이 있는 변방으로 가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교황님은 가톨릭 신자들의 숫자가 적고, 종종 위험하다고 알려진 곳으로도 기꺼이 가셨습니다. 물론 이런 협력이 위험해 보일 수 있고 신중한 준비가 필요한 사안이겠지만 교황님의 용기를 신뢰합니다.”

맥더나 대사는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을 언급하며 인터뷰를 끝냈다. 그는 공산주의의 몰락을 두고, 이데올로기 대결의 종식과 함께 역사의 종말을 선언한 것은 서구의 완전한 착각이라고 말했다.

“한반도의 화해가 냉전의 진정한 종식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는 끝나지 않고 더 복잡하고 불안전하게 흘러갈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평화로운 새 시대를 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관대한 비전을 갖고 더 평등한 관계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윌리엄 스카일스타드 주교

■ 윌리엄 스카일스타드 주교 (전(前) 미국주교회의 의장)

· 버지니아 루 패리스 위원 (미국주교회의 국제정의평화위원회)

"한·미 주교회의 연대해 평화 위한 노력 지속할 터"

2018년 2월 미국주교회의 국제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티모시 브롤리오 대주교는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에게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노력을 지지하며, 한반도의 평화를 증진하기 위해 한국주교회의와 연대할 것을 밝히는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에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이기헌 주교가 ‘평화의 여정을 시작하며’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담화문의 영문 번역본도 포함돼 있었다.

지난해 열린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제1회 국제학술대회의 중요한 성과 중 하나는 미국주교회의와 한국주교회의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연대할 소통의 창구를 열었다는 것이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도 종합토론 시간에 가장 많은 질문과 요청이 향한 곳도 전(前) 미국주교회의 의장 윌리엄 스카일스타드 주교였다. 미국주교회의가 한반도 평화를 위한 여정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요청하는 발언들이 이어졌다.

버지니아 루 패리스 위원

스카일스타드 주교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국제학술대회를 찾은 미국주교회의 국제정의평화위원회 자문위원 버지니아 루 패리스 위원은 이런 관심과 요청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두 사람은 북한과 미국 사이의 힘겨루기 본질을 꿰뚫어 보고 “서로가 즉각적인 조치를 요구하고 있으며 결국은 다시 신뢰의 문제로 돌아가 긴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스카일스타드 주교는 “북한은 이란보다도 발전한 핵기술을 가지고 있으며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는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교회는 인내하고 지켜보며 평화를 도모하는 역할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패리스 위원은 더욱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제안했다. 젊은이들이 평화를 위한 교회의 노력에 동참하도록 팟캐스트, 영상제 등 문화 활동을 통해 참여를 확대하는 미국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의 캠페인들을 소개했다. 더불어 패리스 위원은 “한국교회가 기대하는 대로 미국주교회의 국제정의평화위원회는 한반도 평화 구축 과정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한국교회와 연대하는 한편 미국 정부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정다빈 기자 melani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