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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교황의 방북과 북미 협상 / 이원영

이원영 (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입력일 2018-10-30 수정일 2018-10-30 발행일 2018-11-04 제 3118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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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와 트럼프 대통령이 선포한 미중 간의 ‘무역 전쟁’(trade war)은 당사국인 미국과 중국은 물론, 전 세계 국가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런데 UN의 경제 제재와 미국을 위시한 강대국들의 제재로 다른 국가들과 무역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북한도 이 영향을 받고 있을까?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로 북한의 무역량은 현저하게 축소돼 있다. 그렇지만 북한은 여전히 의식주 필수품을 외부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필수품 중에서도 쌀은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에게 매우 중요한 수입품이다. 그런데 쌀은 주로 민간 차원에서 밀수입되며, 그 거래는 북한의 시장에서 달러화나 위안화로, 암거래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미국과 중국의 화폐로 거래되는 쌀은 ‘무역 전쟁’으로 위안화와 달러화의 환율 변동폭이 매우 커졌기 때문에 매일매일의 쌀값은 크게 변동할 수밖에 없으며, 결국 북한도 ‘무역 전쟁’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런데 쌀과 같은 중요한 상품이 지금처럼 달러화나 위안화로 암거래가 이뤄지는 것은 북한의 화폐인 ‘원화’가 시장에서 교환 수단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게 할 수 있다. 국가 경제 운영의 가장 근본적 수단인 자국의 화폐가 교환 수단으로서 의미를 상실하게 되는 것은 국가 경제 운영이 마비되거나, 국가 주권의 부분적 상실로 귀결된다. 이러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북한 역시 개혁개방과 국제사회로의 진입이 꼭 필요한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비핵화에 대한 보다 신속한 북한의 조치와, 그에 상응하는 미국의 제재 완화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북한과 미국은 ‘네가 먼저해야, 내가 한다’는 샅바 싸움을 하고 있다. 아마도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돼도 이후 실행 방안을 둘러싸고 북미 간의 이러한 힘겨루기는 지루하게 계속될 것 같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정식으로 초청하면 북한을 방문하겠다고 한 것은 이러한 상황의 해결을 위해 매우 큰 의미가 있다. 미국·쿠바의 국교 정상화, 콜롬비아 평화협정 타결 등에 큰 역할을 한 교황은 적개심을 바탕으로 협상하고 있는 전쟁의 당사자가 아니기에, 중재자의 역할을 더욱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 당신 안에서 두 인간을 하나의 새 인간으로 창조하시어 평화를 이룩하셨다”(에페 2,14-15)고 했다. 교황께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당사자들의 적개심을 녹여 평화 속에서 화해할 수 있게 길을 열어주실 것을 간절히 바란다.

이원영 (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