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때로는 명절이 (하)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8-10-23 수정일 2018-10-23 발행일 2018-10-28 제 3117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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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날 아침, 성무일도를 바치러 성당에 갔더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나는 속으로, ‘추석날은 미사 시간이 다른가…. 이걸 누구에게 물어보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몰랐던 나는 성당에서 나와 신학원 쪽으로 걸어가는데, 원장 신부님이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원장 수사님은 나를 보시더니,

“에고, 우리 강 신부님. 어제는 경황이 없어서 미리 말을 못 드렸는데, 오늘 아침부터 며칠 동안은 우리 둘이서 성무일도랑 미사를 봉헌합시다.”

나는 원장 수사님의 말에 깜짝 놀라,

“아니, 신학교 다니는 학생 수사님들은 어디 가셨어요? 어제 저녁 때까지는 함께 회식하며 있었잖아요. 그리고 이번 연휴 동안은 수사님들이 공동체 안에서 함께 지낸다고 하셨는데!”

원장 신부님은 큰 소리로 웃으시더니,

“그렇게 됐어요. 어제 저녁 간단하게 회식을 마치고, 형제들 모두 2박3일 동안 본가에 다녀오라고 휴가를 보내 주었어요.”

“아, 다들 휴가 가셨구나.” “그래요, 한국 사람이라면 명절 때, 가족들과 함께 있고 싶어 하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나 봐요. 예전에 명절 연휴가 짧았을 때면, 자기 집이 먼 지방이나 도서 지방인 형제들의 경우 집에 갔다 오는 것이 불편해 수도원에서 형제들과 명절을 지냈는데. 이번처럼 연휴가 좀 길 때에는…. 그리고 아직 젊은 수사님들이라 요즘 같으면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데 마냥 붙잡아 두기도 좀 그렇기는 하더라고요.”

나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원장 수사님, 혹시 어제 회식할 때 수사님들이 부르던 노래들 때문에 은근히 충격받으신 건 아니죠? 하하하. 사실 저는 어제 젊은 수사님들의 노래를 들으며, 속으로 엄청 웃었어요. 왠지 수사님들이 재치가 있고, 그리고 젊은 수사님들의 표정에는 이번 긴 연휴 기간 동안 잠깐이라도 집에 좀 가면 좋겠다는 마음이 얼굴에 그대로 다 쓰여 있더라고요. 얼마나 부모님이 계신 집에 가고 싶었으면 불렀던 노래들이 다 고향이나 부모님 생각나는 노래를 불렀을까요, 정말 재치 만점이었어요.”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은 하고 있어요. 그러면서도 어제 저녁 회식 분위기가 글쎄…. 뭔가 음…. 꼭, 형제들 모두가 각본에 따라 움직이는 것 같았지만!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볼 때, 혹시 내가 그 형제들의 연기에 말려 든 것은 아닌가 하며 조금은 찝찝해 하기도 하고. 그 이유가 뭔고 하니, 예전에 공동체 회식 때에는 옛날 노래는 잘 부르지도 않았거든요. 오히려 옛날 노래를 부르거나, 부모님 생각나는 노래를 부르면 야유를 하던 형제들인데. 아무튼, 어제 회식을 하면서 연휴 동안 고향에 잠시나마 다녀오고 싶어 하는 형제들의 마음이 있는 그대로 전해지더라고요. 그 마음이 나쁜 것도 아니고. 그래서 어제 저녁 회식이 끝나자마자, 경리 담당 수사님 방에 가니 지금 은행에 가서 현금을 찾아오라 그랬어요. 그런 다음 봉투에 왕복 차비랑 소고기 한 근 값을 줘서, 가족들과 명절 잘 보내라고 추석 전 날이라, 서둘러 본가로 보냈죠.”

“야, 원장 수사님, 정말 멋있다. 그런데 식사도 식사지만, 어제 수사님들이 하루 종일 만든 그 엄청난 양의 음식은 어떻게 해요?”

“에이, 그거 뭐, 걱정하나요. 신부님과 내가 아침, 점심, 저녁으로 먹으면 되잖아요. 식사는 내가 준비할 테니, 신부님은 피정 하시다가, 식사 시간 맞춰 식당으로 나오시면 됩니다. 아시겠죠, 하하하.”

그렇습니다. 수도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굳이 명절을 꼬박꼬박 챙기는 것이 좀 그렇기는 합니다. 하지만 가족이 모이는 명절에 가족과 함께 지내는 것도 수도 공동체 형제들을 가족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는데 또 하나의 힘을 주지 않을까 합니다. 때로는 명절을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것도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