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환경

[생태칼럼] (34) 가을 설악

박그림 (아우구스티노)rn녹색연합·‘설악산국립공원 지키기 국민행동’ 공동대표
입력일 2018-10-23 수정일 2018-10-24 발행일 2018-10-28 제 3117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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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들은 계절의 흐름에 따라 스스로의 삶을 추스르며 가을을 맞이한다. 열매를 맺고 나뭇잎을 가장 아름다운 색깔로 물들이며 찬란한 계절을 만들어낸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색깔들로 물든 나무들의 어울림으로 숲은 더욱 아름답게 빛난다. 서로가 서로를 더욱 돋보이도록 부추기는 가을 숲을 바라보며 사람들의 세상을 떠올린다.

스스로 아름답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은 왜 더 아름답게 돋보이지 않는가? 생명의 경이로움과 존재가치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의 세상은 왜 아픔과 슬픔과 걱정이 끊이지 않는 것인가? 쓸쓸해지는 마음을 다독이며 붉게 물들어가는 설악산을 바라보아도 마음이 편치 않은 까닭은 시월 내내 탐방객들로 시달리는 설악산의 모습 때문이다.

지난해 설악산 국립공원에는 350만 명의 탐방객이 다녀갔다. 하루에 1만 명꼴로 사람들이 찾아온 것이다. 더구나 350만 명 가운데 가을철 한 달 동안 외설악을 찾은 탐방객이 100만 명을 넘었고 하루에 적어도 3만 명 이상이 외설악 일대에서 북적거렸다. 가장 많은 탐방객이 찾은 날은 하루 7만 명이 다녀간 적도 있었다.

사람에 치이고 소음에 시달리고 자연이 온전하게 눈에 들어올 리 없다. 탐방객들로 북적이는 가을 설악에서는 안타깝게도 자연과 마음을 나눌 기회조차 빼앗긴 것은 아닐까? 설악산에 들어 깊어가는 가을의 아름다움을 나누고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지만 바쁘게 움직이는 수많은 탐방객들 속에서 풍경은 스치고 지나갈 뿐 깊이 들어오지 않는다.

넉넉한 시간 속에서 가족들과 함께 맞이하는 가을 설악의 아름다움은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해주는가. 붉게 물든 가을 숲에서 쏟아지는 눈부심은 오직 그 자리에 있으므로 느낄 수 있는 경이로움이며 그 풍요로움과 경이로움을 이다음 아이들도 누릴 수 있기를 빌며 가을 숲은 느린 걸음으로 들어가야 한다. 자연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숲의 냄새를 가슴 깊이 빨아들일 때 자연은 우리들을 품고 다독여 줄 것이다. 가을 설악이 아픔이 아니라 기쁨이기 위해서는 설악산이 견딜 수 있을 만큼만 받아들이는 입산 예약제가 당장 필요하지만, 계획뿐이며 어떤 대책도 없이 설악산은 상처와 아픔 속에 신음하고 있다.

국립공원이 아니라 유원지를 방불케 하는 가을 설악을 찾는 탐방객 여러분들에게 묻는다. “아름다움을 보기 위한 의무는 다하고 계십니까? 자연에 대한 예의와 염치는 갖추고 계십니까? 국립공원의 가치는 어디에 있습니까?”

박그림 (아우구스티노)rn녹색연합·‘설악산국립공원 지키기 국민행동’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