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부족한 자의 고백 / 김애자

김애자 (바르바라) 시인
입력일 2018-10-23 수정일 2018-10-23 발행일 2018-10-28 제 3117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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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다시 바뀌었다. 나무도 닥쳐올 추위를 빈 몸으로 맞으려 잎을 떨구며 준비를 하고 있다. 풍요롭던 젊은 날들을 다 보내고 이제는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나 또한 겨울의 초입에 있는 셈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활동은 줄어들고 쓸데없는 생각만 점점 많아지게 마련이지만, 먼 길 떠나야 할 그날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으랴.

몇 달 전, 이사를 앞두고 마지막 주일미사를 하던 날, 젊은 손님 신부님의 강론 한 부분이 내 마음을 끌었다.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미사를 해야 하는가를 말씀하시던 중에 감명 받았던 책을 예로 들어주신 것이다. 메모를 준비하지 못했던 나는 지나치며 무심히 들은 책의 이름을 외울 수가 없었다. 미사가 끝나고 몇 사람에게 물었지만, 모두 모른다는 대답뿐. 우여곡절 끝에 알게 된 책의 제목은 정훈 신부님이 쓰신 「미사의 소프트웨어」였다. 이사를 하고 어려운 일들이 대강 정리가 된 뒤에 책을 구입하려 했으나, 출판된 지 오래된 책이라 절품이란다.

어떻게 해서든 그 책을 꼭 사고 싶었다.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검색을 해보니 다행히도 2권이 남아있었다. 또 그 중 한 권은 내가 살고 있는 수원에 있다고 했다. 도착하기 전에 팔릴까 봐 얼마나 조바심이 나던지. 책 한 권을 사는데 그렇게 애를 썼다. 그런데 막상 읽기 시작하고 보니 애를 써서 구한 것이 결코 헛수고가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미사에 참례하기를 좋아했지만, 알고 보니 그동안 내가 드려왔던 미사는 황당할 정도로 자기중심적인 것이었다. 미사의 주인공은 항상 나였고 내가 편한 방식으로 미사를 바쳐왔으며 그러면서도 언제나 열심히 잘 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 살아왔던 것이다.

나는 예수님과 그분을 수행한 사제를 모시고 내가 미사를 지낼 잔칫상을 직접 차리는 입장이 돼야 한다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미사가 지닌 기능과 효과를 확신하며 참례한 적도 없었다. 나의 삶을 본격적으로 점검하고 신앙적으로 정돈하기 위해 미사 전에 일찍 성당에 가서 마음을 가다듬는 일도 쉽지 않았거니와, 독서와 복음은 그날 하느님께서 내 삶에 내려주시는 생명의 말씀으로, 그 말씀의 주인공은 하느님이 아니라 내가 돼야 한다는 깨달음도 없었다. 미사를 시작할 때의 성호경도 ‘나를 만드시고 구원하시고 이끌어 가시는 분의 이름으로’라는 말뜻 같은 것은 새길 생각도 않았다. 시종일관 습관적으로 미사경문을 외웠으며, 오직 참례를 한다는 것에만 의의를 두었던 것 같았다. 그뿐만 아니라 수시로 머릿속을 들락거리는 세속 일들로 미사에 집중하지 못하기가 다반사였다.

내용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기도서를 펼쳐놓고 미사경문과 대조를 해가며 읽었다. 기도서에는 평생을 습관적으로 되뇌어온 경문에 소제목들이 일일이 달려있었고, 책에는 그 순간들마다 어떤 묵상을 해야 좋은지가 세세히 안내되어 있었다. 미사경문은 비록 짧더라도 그 속에는 묵상을 해야 할 것이 너무도 많았다. 내 안에 아무런 ‘소프트웨어’도 준비하지 않은 채 너무도 부족한 모습으로 미사에 참례했던 무지가 혼자서도 새삼 부끄럽고 또 부끄러워 책장을 덮을 수가 없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애자 (바르바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