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인의 눈] 진정성의 시대, ‘참 나’를 찾아서 / 오세일 신부

오세일 신부 (예수회,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입력일 2018-10-23 수정일 2018-10-23 발행일 2018-10-28 제 3117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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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님과 문재인 대통령의 만남을 TV로 보면서, 너무나도 기뻐서 하느님께 절로 감사와 찬미를 드렸습니다. 두 분은 타임지에 영향력 있는 지도자로 선정되기도 했는데, 구시대적인 지도자들과는 아주 다르게 ‘진정성’이 깊이 묻어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두 분 모두 각자의 인생 순례에서 커다란 위기와 혹독한 시련을 겪기도 하셨지만, 궁극적으로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충만한 삶을 공유하고자 애쓰시며 세상 사람들에게 큰 ‘기쁨과 희망’을 주고 계십니다.

현대사회를 흔히들 “진정성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오늘날 모든 종교는 ‘참 나를 찾는 충만한 삶의 여정’을 가르치고 있는데, 이것은 (남들이 만들어놓은) 삶의 정답을 그저 따라가는 순응과는 달리 개인이 일상의 삶 한복판에서 자기 내면에 가장 진실된 길을 찾아나서는 여정입니다. 그 진정성의 여정에서 개인은 본인이 추구하는 가치와 정감, 그 고유한 삶의 의미를 스스로의 방식으로 실현해 보기를 꿈꾸기 때문에, 때론 모험과 거절, 실수와 시행착오, 실패와 아픔을 대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삶에서 체험하는 빛과 어둠 사이에서 ‘성찰’하고 배우며 살아가는 열린 자세를 지향하는 ‘진정성’의 마음가짐에는 타인의 기대에만 맞추어 사는 데서 얻게 되는 편안함, 안전 혹은 세상적 성공과는 질적으로 다른 차원에서의 ‘영적인 깊이’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신자유주의 시장 체제의 무한 경쟁에 시달리며 불안한 마음으로 불확실한 삶을 사는 만큼, ‘획일적이고 물질적인’ 세상의 기준에 끌려가기가 참 쉽습니다. 학벌, 재력, 용모, 등 (외적인 부분만을 강조하며) 모든 것을 ‘돈’과 ‘효용’의 차원에서 예단하기 쉬운 세상에서 나만의 존재와 가치를 있는 그대로 발견할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방탄소년단(BTS) 의 ‘love yourself, love myself’를 들어보니, 세상적인 버전의 ‘복음’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내 걸어온 길 전부로 답해, 내 실수, 흉터도… 빠짐없이 모두 나.” 세상살이에 지치고 힘들었던, 넘어지고 아파했던 자기들의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희망과 사랑, 믿음의 메시지에 전 세계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가 가장 행복한 순간들은 참된 나를 만나는 때가 아닐까요? 무엇인가에 복잡하게 얽매이고 짓눌려 어둠 속에서 빛을 잃고 살아가면서 내가 누구인지를 잊어버리고 살다가, 나 자신 본연의 마음을 만날 수 있을 때 체험하게 되는 ‘영적 기쁨’은 세상적 성취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가 없지요! 특히나, 실수하고 실패하고 좌절하고 힘겨워할 때 ‘나’를 있는 그대로 내 존재 자체로 받아들여주고 사랑해주는 그 누군가가 있다면, 우리의 스러져가던 생명은 다시금 약동하게 됩니다.

그런데 인간의 마음 심연에는 다양하고도 때론 상충하는 욕망들이 있고, 이로 인해 우리는 상처와 좌절, 애착과 두려움 등으로 갈등을 겪기 때문에, 진정성을 찾아나서는 것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듯 불완전한 우리가 우리 존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어린 시선으로 우리 내면을 바라볼 때 가장 깊은 마음의 움직임(the deepest desire)에서 진정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입시준비로 고생하는 어린 학생들, 취업준비에 애달파하는 젊은이들이 ‘무한 경쟁’의 쳇바퀴에서 때로는 한 걸음 벗어나서 ‘존재의 근원’이신 하느님의 시선을 마주할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시험에 붙건 떨어지건, 성적과 상관없이, 내 존재 그 자체를 절대적으로 받아들여 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그분 안에서 참된 삶의 의미를 맛볼 때, 새로운 생기를 되찾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 역시 ‘진정성’을 찾고 증거할 때 우리 안에 복음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구시대의 신분에서 오는 외적 권위를 더 이상 존중하지 않는 현대사회에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영적이고 내면적인 권위를 가지고 새롭게 복음을 증거 해야 합니다. 교회 전통에 대한 의무와 위계에 대한 순종만을 요구하기 이전에, 한 사람 한 사람이 참으로 귀한 존재라는 진정한 가치를 우리가 함께 발견하고 자비로이 동반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합니다.

“참으로 충만하게 살아가는 인간이아말로 하느님의 영광입니다.”(성 이레네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세일 신부 (예수회,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