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현장에서] ‘포스트잇’과 ‘대자보’ / 이소영 기자

이소영 기자
입력일 2018-10-23 수정일 2018-10-23 발행일 2018-10-28 제 3117호 23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과거엔 ‘대자보’였다면, 지금은 ‘포스트잇’(Post-it)이다.”

중앙대 사회학과 이나영 교수는 10월 18일 ‘미투 운동, 그 변화와 연대’ 토론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예전엔 미리 의견을 나눈 뒤 표현을 다듬어 써 붙이는 ‘대자보’를 좋아했다면, 이제는 각자 생각을 적어 바로 떼었다 붙일 수 있는 ‘포스트잇’을 선호한다는 얘기다.

포스트잇 시위는 최근 몇몇 사례들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른바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피해자 추모 포스트잇들이, 스쿨 미투 현장에는 교실 창문들에 학내 성폭력 고발 포스트잇들이 붙었다. 1인 가구의 증가, 혼밥(혼자 밥 먹기)·혼영(혼자 영화보기)과 같은 신조어뿐 아니라 시위양상에서도 ‘나 홀로 문화’를 확인할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서울시자살예방센터 황순찬 센터장이 지난 10월 22일 ‘4대 종단과 함께하는 열린 포럼’에서 한 말은 이러한 나 홀로 문화가 가볍게 보고 넘길 일만은 아니라는 걸 알려준다. 자살을 하는 사람들은 자살 시도 전에 꼭 이를 암시하는 행동이나 말을 하지만, 주변에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탓에 이를 막을 수 있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날 포럼 참가자들은 “자칫 자살을 남의 일로 치부하기 쉽지만, 결국 죽음이라는 점에서 나의 일”이라는 데에 의견을 모았다. 내 주위에 누군가 어려움을 겪고 있진 않은지 관심 갖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꽤 많은 이웃을 살릴 수 있다. 지금 이 현실에선 혼자만의 ‘포스트잇’ 보다, 결정에 앞서 누군가와 충분히 교류할 수 있는 ‘대자보’ 문화가 절실하다.

이소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