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길에서 쓰는 교구사] 북수동본당 (하)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8-10-16 수정일 2018-10-16 발행일 2018-10-21 제 3116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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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천지의 모후 꾸리아 창설
3만여 명 활동하는 평신도 단체로 성장 

북수동본당 상아탑 쁘레시디움이 3000차 주회를 맞아 2016년 1월 17일 교구장 이용훈 주교(가운데)와 축하식을 갖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북수동본당 옆으로 한눈에 보기에도 오래된 석조건물이 보였다. 1954년 세워진 이 건물은 옛 소화초등학교 건물이다. 지금 소화초등학교는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광교중앙로 30에 자리하고 있지만 2002년까지는 이 건물을 사용했다. 건물에는 ‘폴리 화랑’이라는 간판이 걸려있었다. 소화초등학교 설립자이자 하느님의 종으로서 시복이 추진되고 있는 데지레 폴리 신부의 이름을 따서 현재는 화랑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곳 ‘폴리 화랑’은 본당과 소화초등학교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기도 하지만, 교구 레지아의 역사적인 현장이기도 하다.

교구 레지아의 직접적인 뿌리가 된 천지의 모후 꾸리아는 바로 이 건물에서 시작했다. 1960년 1월 설립된 천지의 모후 꾸리아는 바로 이 학교 건물에서 창설되고 매주 회합을 진행했다. 창설 당시 천지의 모후 꾸리아에서는 행동단원 106명, 협조단원 255명이 활동했다. 이후 꾸리아 간부들이 대부분 고등동본당 신자였던 관계로 고등동본당으로 회합장소를 옮기기는 했지만, 여전히 이 건물은 본당 쁘레시디움들이 주회합을 여는 공간으로 활용됐다.

천지의 모후 꾸리아는 빠른 속도로 단원들을 늘려나가며 신자들의 성화와 교회봉사,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회봉사들을 펼쳐나갔다. 1963년 교구 설정을 계기로 1964년 1월에는 꼬미시움으로 승격됐다. 꼬미시움 승격 당시에는 꾸리아 4곳, 쁘레시디움 48곳, 행동단원 632명, 협조단원 1184명에 이르는 규모로 성장했다. 불과 4년 만에 단원들이 4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이다.

천지의 모후 꼬미시움은 1981년 3월 19일에는 무염시태 세나뚜스로부터 레지아로 승격됐다. 현재 천지의 모후 레지아는 3만 여 명의 단원이 활동하는 교구에서 가장 큰 규모의 평신도사도직단체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본당은 천지의 모후 레지아 성장의 첫 걸음을 내딛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본당의 레지오마리애 활동도 꾸준히 이어나갔다. 1959년 4월 11일 상아보탑 쁘레시디움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상아탑 쁘레시디움은 교구의 역사보다도 오랜 기간 주회합과 활동을 이어왔다. 지난 2016년 1월 17일에는 북수동성당에서 3000차 주회를 진행하고 교구장 이용훈 주교 주례로 축하미사를 봉헌하기도 했다.

상아탑 쁘레시디움은 고급협조단원인 아듀또리움 단원으로 최덕기 주교와 문희종 주교가 기도로 협조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사제 8명, 수녀 8명, 평신도 25명이 협조단원으로 함께하고 있어 여전히 교구 레지오마리애의 뿌리로서 역사를 이어나가고 있다.

이용훈 주교는 3000차 주회 축하미사 강론을 통해 “교구 레지아의 어머니인 상아탑 쁘레시디움에서 교구 레지오마리애를 발전시킨 힘이 나왔다 생각한다”고 치하하면서 “앞으로도 성모님을 공경하고 그리스도인의 길을 걷길” 당부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