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전통 가정과 가톨릭 가정] (16) 식사와 식구

김문태 교수(힐라리오)rn서울디지털대학교 교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문화가
입력일 2018-10-16 수정일 2018-10-16 발행일 2018-10-21 제 3116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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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의식과 유대감 기르는 ‘밥상머리 교육’
원초적이면서 가장 본질적 관계 ‘한솥밥’ 먹는 식구
가족의 정과 함께 음식에 대한 감사함 나눌 수 있어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다. 어려서 익힌 생각과 말과 행위가 일생을 좌우한다는 말이다. 그만큼 어려서의 교육이 중요한 것이다. 특히 외부인과의 접촉이 제한되어 있는 어린 시절의 교육은 가정 안에서 가족들과의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이때 부모와 형제자매의 언행이 어린이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무엇이든 따라하는 어린이의 습성 상 부모와 형제자매의 언동은 마땅히 따라 해도 되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가정은 그리스도교 생활의 첫 번째 학교, 더욱 풍요로운 인간성을 기르는 한 학교이다. 인내와 노동의 기쁨, 형제애, 거듭되는 너그러운 용서, 그리고 특히 기도와 삶의 봉헌을 통하여 하느님을 경배하는 것을 배우는 곳이 가정이다.’(「가톨릭교회교리서」 1657항)라는 대목을 되새기게 된다.

가정에서 자녀를 가르치기에 가장 좋은 때가 바로 식사시간이다. 온 가족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맛난 음식을 나누는 자리기에 분위기가 여느 때보다 화기애애할 수밖에 없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에게 사람답게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전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이른바 밥상머리교육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또한 실용적인 측면에서 자녀들이 식사예절을 배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쥐는 방법부터 식사예절 전반을 익히는 장이 된다.

‘어른이 먼저 수저를 든 후에 음식을 먹는다. 숟가락과 젓가락은 한꺼번에 들고 사용하지 않는다. 음식은 먹기 적당한 양을 입에 넣고 입을 다물고 씹는다. 음식을 먹으며 이 부딪치는 소리나 씹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 국물은 그릇 채 들고 마시지 않고 숟가락으로 떠먹는다. 밥이나 반찬은 뒤적이거나 헤치지 않고 먹는다. 음식이 입안에 있을 때는 말하지 않고 삼킨 후에 말한다. 그릇이나 수저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나지 않게 한다. 음식을 다 먹은 후에는 수저를 오른쪽에 가지런히 놓는다. 어른보다 먼저 식사가 끝났을 경우에는 수저를 밥그릇이나 국그릇 위에 얹어 놓았다가 식사가 끝나면 내려놓는다.’

식사예절에서 중요한 것은 격식이 아니라 마음이다. 어려서부터 감사하는 마음으로 음식을 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상 위에 오른 음식이 있기까지 애쓴 이들, 예컨대 농부나 어부나 상인이나 요리한 사람까지를 포함한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특히 가톨릭 가정에서는 식사 전후에 일용할 양식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림으로써 자연스럽게 음식뿐만 아니라, 함께 음식을 나누는 가족의 소중함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한 집에 살며 끼니를 함께 하는 이를 식구라 한다. 부부를 중심으로 혈연관계에 있는 이들이 함께 살고 있는 사회의 가장 작은 집단이 가정이며, 그 안에서 한 집안을 이루는 사람들이 가족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 가정 안에서 생활하는 가족들은 한 식구가 된다. ‘한솥밥을 먹는다.’는 말이 있다. 이는 곧 공동체 의식 내지 유대감을 대변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만큼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은 가정공동체에 있어서 가장 원초적이고도 본질적인 행위다. 따라서 그런 행위를 공유하는 식구들은 가장 원초적이고도 본질적인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다. 가정에서 가족들이 함께 밥을 먹는 일이 중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부모는 영양가 있는 음식을 준비해 자녀를 양육하고, 반대로 자녀는 맛난 음식을 마련해 부모를 봉양한다. 음식을 장만하는 일이야말로 윗사람의 친애와 아랫사람의 공경이 시작되는 지점인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증자는 ‘효자가 연로한 부모를 대함에 있어서 그 마음을 즐겁게 하며, 그 뜻을 어기지 않으며, 그 귀와 눈을 즐겁게 해드리며, 그 잠자리와 거처를 편안하게 해드리며, 음식으로 정성껏 봉양해야 한다.’(「소학」 〈내편〉)고 했다.

요즘 식구들이 함께 밥을 먹는 경우가 드물다고 한다. 자고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고, 등하교나 출퇴근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현상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적어도 주말만이라도 때를 맞춰 식구들이 함께 밥 먹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노력마저도 하지 않기에 가장 기본적인 밥상머리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최소한의 예의범절과 인성교육의 계기가 마련되지 않는 것이다.

아울러 함께 밥을 먹지 않음으로써 가정의 푸근한 분위기나 가족의 끈끈한 정이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가족이 식구처럼 여겨지지 않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부귀와 권세가 아니라 동고동락하고자 하는 마음이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첩경이다. 가족과 함께 하고자 하는 데에서 오는 마음의 평화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 길로 나아가는 첫 걸음이 바로 가족과 함께 밥 먹는 일이 아닐까 한다.

김문태 교수(힐라리오)rn서울디지털대학교 교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문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