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기고] 교황님 방한을 기대하며 평화를 생각한다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장 이기헌 주교(의정부교구장)
입력일 2018-10-16 수정일 2018-10-19 발행일 2018-10-21 제 3116호 12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한반도에 부는 평화의 바람… 지금이 바로 기도할 때입니다
전쟁 없는 상태와 평화는 달라
서로 존중·사랑하는 민족에게 주님 주시는 선물이 ‘참 평화’
하느님 안에선 한 ‘인류 가족’
공동의 아버지를 기초로 삼고 형제애 나누고 평화 이어가야

문재인 정부 들어 올해에만 남북 정상회담이 세 차례 열리고 제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이 꾸준히 언급되면서 한반도에는 그 어느 때보다 화해와 화합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지금의 한반도 상황을 지속하고 북한의 비핵화와 6·25전쟁 종전선언, 평화협정 체결로까지 이어가는 것은 남북한 모두의 당위이자 의무다. 교회는 기도로써 궁극적인 한반도 평화정착에 힘을 실어야 한다는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이기헌 주교의 특별기고문을 싣는다.

평화의 바람이 한반도에 부는 이때, 그리스도인들은 평화의 일꾼으로 한반도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사진은 2011년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에서 봉헌된 ‘한반도 평화기원 미사’.

1. 교황님 방북이 성사되기를 기도드리며

최근 한반도 평화의 여정에 좋은 소식들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남북 정상회담이 벌써 세 차례나 열렸고 환하게 웃는 정상들의 모습은 무언가 남북관계에 좋은 일들이 생길 것 같은 희망을 주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더더욱 놀라운 일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통해서 교황님 초대 의향을 밝히면서 교황님이 오시면 열렬히 환영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평소 한반도 평화를 늘 염려해 오셨고 마음 아파하시며, 전 세계 신자들에게도 기도에 동참하기를 권고해 오셨습니다.

그동안 침묵의 교회에 머물렀고 신앙의 불모지인 북한 땅을 교황님께서 방문하신다는 것은 한반도의 큰 축복이며 평화의 사도로서의 눈부시게 빛나는 행차가 될 것입니다. 북녘땅에서 북녘의 형제자매들과 교황님께서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며, 북녘땅에 하느님의 특별한 자비와 사랑이 가득하길 빌며 봉헌하는 미사를 상상만 해도 기쁜 일입니다.

그러나 아직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조심스러운 일이 남아 있는 게 사실입니다. 우리는 교황님의 방북이 성사돼 큰 결실을 볼 수 있도록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해 열심히 기도드려야겠습니다. ‘평화’라는 단어가 1년 내내 우리의 삶에 맴돌았던 한해이기에, 우리는 교회가 말하는 평화가 무엇이며 평화의 사도로 불리움 받은 신자로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2.교회가 말하는 평화

1) 성경이 말하고 있는 평화

예수님 성탄의 밤 천사들이 노래한 평화는 하느님을 의지하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사람들’(요한 21,19)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또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1,19)라는 인사를 통해 제자들에게 평화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으심을 보았으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하지 못한 제자들이었기에, 이 평화의 인사와 함께 만난 예수님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불신과 절망, 불안과 두려움들을 모두 없애주셨으며 기쁨과 평화라는 새롭고 힘찬 선물을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체험한 이런 평화는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 그리고 하느님과 화해하고 인간과 화해하는 회개를 실천한 사람들이 얻을 수 있는 평화입니다.

모든 시대, 모든 인류가 갈망했던 이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거나 적대세력 간의 균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사야가 그린 동물의 세계처럼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며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는”(이사 11,6) 강대국이 약소국과, 강자가 약자와 함께 존중과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나라들과 민족들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평화는 정의의 열매이며 사랑의 결과(「지상의 평화」)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의 선익을 보호하고, 사람들과 민족들 서로 간에는 존중이 있어야 하며, 형제애의 끊임없는 실천 없이는 평화는 실현될 수 없습니다(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 제45차 평화의 날 담화).

2) 기도는 평화를 얻기 위해 가장 중요한 길

평화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선물인 이 평화는 우리의 기도를 요구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평화를 위한 기도대열의 맨 앞줄에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며, 평화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함께 기도하며 기쁨을 찾는 사람들입니다(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제12차 평화의 날 담화). 성모 마리아께서 루르드나 파티마에 발현하시어 말씀하신 것도 세계평화를 위해 기도드리라는 것이었으며, 특별히 묵주기도를 드릴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한반도에 평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도 전 세계 많은 신자들이 바친 기도들과 우리들의 기도가 힘이 됐을 것입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기도해야 할 사람들이 바로 우리 신자들입니다. 지난 2014년 방한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평화를 위한 미사 중에 “온 민족이 함께 한마음으로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간청을 하늘에 올려 드릴 때, 그 기도는 얼마나 큰 힘을 지니겠습니까!”(2014년 8월 18일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미사) 하고 강조하셨습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밤 9시에 기도드리는 일을 잊지 않고 끊임없이 하도록 합시다.

3)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평화의 일꾼으로서 소명을 받았습니다

평화의 일꾼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교육입니다. 교육은 먼저 가정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정의와 사랑과 평화에 대한 교육이 이뤄져야 할 첫 번째 학교가 바로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 자녀는 평화롭게 더불어 살 수 있게 하는 인간적인 가치와 그리스도적인 가치를 배웁니다. 세대 간의 연대, 규칙 존중, 용서, 환대를 배웁니다.”(제45차 평화의 날 담화)

특히 교회와 사목자는 신자들에게 평화의 참된 의미, 형제애, 연민, 연대, 나눔과 협동, 자연에 대한 사랑, 능동적인 공동체 활동을 배울 수 있는 교육의 기회를 마련해 줘야 합니다. 그리고 신자들이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연대할 수 있도록 본당에서 평화를 위한 미사를 정기적으로 바치고, 본당 사목회 구조 안에도 민족화해분과를 설치하도록 해야 합니다. 주교회의 차원에서 각 본당에 설치하자고 한 민족화해분과는 본당에서 기도의 모임을 가지고 평화를 위한 교육의 기회를 마련하는 데 좋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4) 형제애야말로 평화의 동력이며 씨앗입니다

형제애는 인간의 본질적인 특성입니다. 인간은 관계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형제애가 없으면 정의로운 사회를 이룰 수 없고, 확고하고 지속적인 평화를 기대할 수도 없습니다.

평화의 실현은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 한 인류 가족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 있습니다. 공동의 아버지를 궁극적인 기초로 삼지 않는 형제애는 지속될 수 없습니다(프란치스코 교황, 제47차 평화의 날 담화). 그런데 형제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를 비롯해 우리 사회는 늘 불화와 갈등이 끊임없이 생기고 있습니다. 공동체이기에, 인간들의 집단이기에 그러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는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이 돼야 합니다.

한반도에 평화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고, 교황님께서 평화의 사도로 큰 발걸음을 하게 되신다면, 틀림없이 북녘땅에도 더 훈훈한 평화의 바람이 불게 될 것이고, 믿음의 씨앗도 서서히 자라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는 평화를 살아가며 평화의 작은 사도들이 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가장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할 것은 바로 형제애입니다. 세대가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정치적인 성향이 다르더라도, 형제를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런 사회로 성장할 때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오리라 생각합니다.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장 이기헌 주교(의정부교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