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대구대교구 성모당 봉헌 100주년 감사미사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18-10-16 수정일 2018-10-16 발행일 2018-10-21 제 3116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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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후에도… 이 아름다운 언덕에서 묵주기도 계속 되리
주교관·신학교·주교좌성당 건립에 감사하며 성모당 봉헌
루르드 성모동굴 본떠 세운 성모당, 전국서 찾는 순례지로
교구, 100주년 기념하며 묵주기도 봉헌 운동 등 정성 모아

“천주의 성모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아멘.” 100년 전인 1918년 10월 13일, 성모당에는 몇 날 며칠을 걷고 또 걸어 봉헌식에 참석한 이들로 가득찼다. 그로부터 꼭 100년이 지난 10월 13일 거행된 대구대교구 성모당 봉헌 100주년 감사미사 전경. 사진 박원희 기자 petersco@catimes.kr

100년 전, 대구대교구(당시 대구대목구)는 교구 주보성인인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에게 성모당을 봉헌했다. 교구 기초를 다질 수 있도록 전구해준 것에 감사하며 지은 “약속의 결실이자 은총의 선물”이었다. 교구는 이를 기념하며 10월 13일 대구 남산동 성모당에서 봉헌 100주년 감사미사를 거행, 초대교구장의 신심과 원의를 되새기며 그리스도를 따라 새로운 100년을 향해 더욱 힘차게 나아갈 뜻을 다졌다.

100년 전과 똑같이 더할 나위 없이 맑고 선선한 가을 하늘에 그때와 똑같이 팡파르가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성모당 경내를 빼곡히 채운 4000여 명의 교구민들은 한 목소리로 묵주기도 ‘환희의 신비’를 봉헌했다.

■ 100년 후 오늘

대구대교구 성모당 봉헌 100주년 감사미사는 교구장 조환길 대주교 주례로 봉헌됐다. 또한 교구 총대리 장신호 주교를 비롯해 뤽 라벨 대주교, 도미니크 블랑쉐 주교, 교구 및 프랑스 사제단이 공동집전했다. 라벨 대주교는 대구대교구 초대교구장인 플로리앙 드망즈 주교(Florian Dimange, 한국명 안세화)의 고향 교구인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교구 교구장, 블랑쉐 주교는 대구본당(현 주교좌계산본당) 초대 주임 아쉴 로베르 신부(Achille Paul Robert, 한국명 김보록)의 고향 교구인 벨포르-몽벨리아르교구 교구장이다.

조 대주교는 이날 미사 강론을 통해 교구 첫 시작과 드망즈 주교의 사목 열의, 성모당 봉헌 역사 등에 관해 소개하고 “100년 전 봉헌의 마음을 지금 다시 새롭게 살아가는 것은, 보다 더 절실하게 성령께 의탁하고 성모님께 전구하며 하느님을 올바로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며 교회 본연의 모습대로 살아가자고 강조했다.

특히 교구민들은 미사 중에 성모당 봉헌 100주년을 기념하며 올해 2~9월에 바친 묵주기도 4673만8520단을 봉헌했다. 미사에 앞서서는 대건중학교 수페르나 윈드오케스트라의 기념 연주와 루르드 문학미술제 당선작 ‘그대가 천국이라’ 시낭송,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에게 드리는 꽃 봉헌 시간도 마련했다.

교구는 2018년 ‘새로운 서약 새로운 희망’을 표어로 정하고, 초대교구장 드망즈 주교가 성모 마리아에게 도움을 청했던 청원을 이 시대에 새롭게 실천하는데 집중해왔다. 이에 관해 조 대주교는 사목교서에서 “개인 및 각 가정과 본당에서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고 성소자 발굴과 사제양성을 위해 노력하며 각 가정이 먼저 기도하는 공동체가 되도록” 힘쓸 것을 당부한 바 있다. 교구민들 또한 각 본당을 중심으로 묵주기도운동을 펼치고 도보성지순례, 루르드 문학미술제, 마니피캇 문화예술제, 열린 음악회 등을 통해 성모의 전구에 감사하고 역사를 기념하는 시간을 가져왔다.

■ 100년 전 어제

아무 것도 없었다. 1911년 4월 8일, 드망즈 주교가 초대 대구대목구장으로 임명되자 당시 서울대목구장이던 뮈텔 주교는 “나눠 줄 재산이 없으니 가난을 함께 나누십시오”라고 말할 정도였다. 경상·전라·제주도까지 넓은 지역을 관할해야 했지만 사제 수도 너무나 부족했다. 오로지 ‘신뢰하고 일하라’는 말씀에 기대어 드망즈 주교는 루르드 성모를 교구의 주보성인으로 모셨다. 교구장 임명 후 대구로 내려와 처음 맞이한 주일이었다. 이어 드망즈 주교는 주교관(교구청사) 건축과 신학교 설립, 주교좌성당 증축 등 세 가지를 청하고, 이 모든 것이 이뤄지면 루르드의 성모동굴(성모당)과 같은 곳을 마련해 신자들이 순례할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서원했다.

그로부터 7년이 채 안 되어 주교관과 신학교를 마련하고 주교좌계산성당 증축 기금이 속속 봉헌되는 기적 같은 일들이 이어졌다. 성모당은 대구 시내가 내려다보이고 주교관 내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언덕에 세웠다. 동굴 정면에는 드망즈 주교가 직접 ‘1911 EX VOTO IMMACULATAE CONCEPTIONI 1918’(1911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께 드린 서원에 의해 1918)이라는 글귀를 넣었다. 드디어 1918년 10월 13일, 성모당 봉헌식이 거행됐다. 드망즈 주교의 일기에 따르면, 10월 묵주기도 성월 맑은 하늘 아래 곳곳에서 며칠씩 걸어서 온 신자들과 한국의 모든 성직자들이 모인 날이었다.

이후 성모당은 대구대교구민뿐 아니라 전국 신자들이 끊임없이 순례하는 성모성지로 자리 잡았다. 일정 조건에 따라 이곳을 순례하고 기도하면 전대사의 은총도 주어진다. 100년 전에 안치한 성모상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성모당에서는 오늘도 100년을 이어온 묵주기도 소리가 들린다.

이동구 교구 총회장(오른쪽)이 ‘성모당 봉헌 100주년 묵주기도 운동’ 결과를 교구장 조환길 대주교에게 예물로 봉헌하고 있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교구장 뤽 라벨 대주교가 신자들과 악수하며 인사하고 있다.

성모당 봉헌 100주년 감사미사에 앞서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는 신자들.

1918년 10월 13일 대구대교구 성모당 봉헌식 후 함께한 드망즈 주교(앞줄 가운데)와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

주정아 기자 stell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