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독자마당] 어머님의 선종

곽흥수(요한·대구대교구 영천 금호본당 신광공소)
입력일 2018-10-16 수정일 2018-10-16 발행일 2018-10-21 제 3116호 22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저는 내년이면 설립된 지 110년이 되는 시골공소에 살고 있는 80대 노인입니다. 가톨릭신문 독자마당을 읽으면서 20여 년 전 돌아가신 엄마의 마지막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장례를 치르고 써놓은 일기를 찾아봤고 그 내용을 다시 정리하여 보내봅니다.

엄마는 외모가 단정하고 깨끗하시고 사리판단이 분명하신 분이었습니다. 엄마의 평소 일과는 일하는 시간 외에 하루 3~4번은 꼭 성모상 앞에 단정히 앉아 신공(기도)을 드렸습니다. 아침・저녁기도와 묵주기도는 물론 연도문까지도 줄줄이 외우셨죠. 엄마는 95세로 돌아가실 때까지 평생 병원에 한 번 가지 않고 아픈 데 없이 생활하셨습니다. 돌아가실 즈음에는 9남매 중 제일 사랑하셨던 막내 영수네 집에 계셨죠. 운명하시던 날은 9남매 중 외동딸인 안나가 유일하게 임종을 지켜보았습니다.

안나의 말에 따르면, 엄마가 갑자기 “얘야, 나는 이제 신공 못하겠다”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엄마 얼굴을 보니 눈빛이 이상했답니다. 아침과 점식식사를 평소와 다름없이 조금씩 드시고, 안나가 보는 바로 앞에서 고통 없이 평화로운 모습으로 엄마는 눈을 감으셨습니다. 자식들에게 폐 끼치기 싫다고, 3일만 아프다가 성모님이 데려가시길 바라시던 그 소망…, 노랫말처럼 되뇌던 그 소원을 주님께서 들어주신 것인지….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한 말씀은 “이제 신공 못하겠다”는 것. 그 말씀을 끝으로, 한 생명체의 혼이 그렇게 사라졌습니다.

저는 엄마의 그 뼛속 깊이 박힌 신앙심에 영향을 받아 “하느님은 분명 현존하신다는 믿음과 주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고 매달리면 무엇이든 들어주신다”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사노라면 때로는 신앙의 정체성이 흔들릴 때가 있지만, 엄마의 그 거룩한 선종이 저에겐 일종의 경고로 받아들여집니다. 이 모든 것은 엄마가 3대째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깊은 신심 덕분이겠지요….

엄마의 삶을 재조명하면서 이 글을 쓰는 지금, 자식으로 효도 한 번 제대로 못해본 스스로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아리도록 슬픕니다.

엄마! 나를 9남매 중 여섯째로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엄마의 그 깊은 신앙심을 만 분의 일이라도 닮아 실천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곽흥수(요한·대구대교구 영천 금호본당 신광공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