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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제목, 왜곡의 원초적 유혹 / 김지영

김지영 (이냐시오) 전 경향신문 편집인
입력일 2018-10-16 수정일 2018-10-16 발행일 2018-10-21 제 3116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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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을 위한 미디어 리터러시 ⑤
흔히 보도기사의 제목을 두고 ‘저널리즘 기술의 백미’라고 한다. 기사 제목은 그만큼 중요하기도 하려니와 잘 뽑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편집기자들은 취재기자들로부터 기사를 넘겨받아 단 몇 글자의 제목으로 전체 기사 내용을 압축해야 한다. 정확하고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저널리즘의 원칙은 기본이다. 핵심적이어야 하며 쉽고 감각적이면서도 매체의 정체성과 품위까지 반영해야 한다. “이 모든 조건을 지키면서도 어떻게 하면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 잡는 제목을 뽑느냐”는 것이 매체의 ‘태초’부터 전해 내려오는 편집기자들의 고민이다. 자연히 제목 달기는 과장이나 왜곡의 원초적 유혹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면, ‘기사의 요약적 내용이나 핵심적 내용을 대표해야 하며 기사내용을 과장하거나 왜곡해서는 안 된다’(신문윤리실천요강 10조 1항, 표제의 원칙)는 규정은 어기기 십상이다.

과장하거나 왜곡한 제목의 기사는 지금까지 오랫동안 ‘팩트가 허위인 가짜뉴스’는 아니었다. 진실하지 않은 뉴스, 즉 비진실 뉴스였다. 그런데 신문과 방송같은 전통매체 외에도 이들 매체의 온라인 뉴스, 팟캐스트, 블로그·SNS와 이를 기반으로 하는 1인 미디어 등으로 멀티 미디어 시대가 된 요즘, 선정적이거나 과장·왜곡된 제목에다 심지어 기사내용이 가짜인 ‘가짜뉴스’ 못지않게 기사내용과 다른 ‘가짜제목’도 엄청나게 많아졌다.

인터넷 뉴스란에서 ‘헉, 이럴 수가···’라는 등의 선정적 제목에 이끌려 클릭을 해보면 막상 기사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가짜제목’임을 확인한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이렇듯 편집자들이 선정적이거나 과장·왜곡된 표현으로 낚시성 제목을 다는 이유는(심지어 가짜 제목까지도) 열독률이나 시청률, 클릭 수(조회 수)를 올림으로써 광고수익을 높이려는 경제적 이해관계가 우선적이다. ‘클릭 수가 곧 돈이 되는 세상, 돈을 벌기 위해 우선 시선부터 끌겠다’는 것이다.

저널리즘 기술의 백미라는 제목 역시 위기에 빠졌다. 전통있는 신문들이나 관련 온라인 매체는 상대적으로 정도가 덜 하다고 하지만, ‘클릭 수’의 압박에 시달리기는 매 한가지다. 수많은 매체가 난립해있기 때문에 광고유치 경쟁도 그만큼 더 치열하다. 한 일간지의 편집담당자는 “특히 온라인 매체의 경우, 클릭 수가 전체 수입의 절반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에 선정적 제목, 왜곡된 제목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온라인 뉴스의 제목을 신문 제목처럼 정석대로 뽑으면 네티즌들이 거뜰떠 보질 않는다는 것이다. 과거에 경제적 이유 때문에 제목을 과장·왜곡하는 고전적 패턴은 특정 대상을 위해 홍보성 표현을 남발하는 것이었다.

선정적 제목, 왜곡·과장된 제목을 뽑는 두 번째 이유로 매체의 이념이나 정파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 몇 년동안 한국신문윤리위원회로부터 징계조처를 받은 사례를 살펴보자.

「기업 죽이는 대중문화」. 한 경제신문의 1면 머릿기사 제목이다. 악질 재벌 캐릭터가 등장하는 몇몇 드라마와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고 이것이 반기업 정서를 자극할 수 있다는게 기사의 요지. 창작예술작품에 부정적인 이미지의 기업인이 등장했다고 해서 반기업 정서를 걱정한 기사 내용도 그렇지만, 이같은 기사내용을 과장해 ‘기업을 죽이는 대중문화’라고 제목을 뽑은 것은 전형적인 왜곡이다.

다음은 한 보수성향의 일간지 기사 제목이다. 「北, 서울 메트로 서버 5개월 장악했다」. 이 기사는 서울메트로의 서버와 PC 일부가 해킹당했다는 내용으로 피해사례나 해킹주체가 분명하게 확인되지도 않았는데 선정적이고도 과장된 제목을 달았다.

「‘생각 다르면 적’ 이념전쟁/극우들의 ‘비뚤어진 애국’」. 이는 한 진보성향 일간지 기사제목인데 기사를 보면 극우라고 지칭할 만한 이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또 등장인물들을 극우로 볼 수 있는 객관적 근거가 제시돼있지 않다.

세 번째 이유로는 기사 내용에 대한 편집자의 선입견을 들 수 있다. 기사내용에는 ‘A씨가 100억원 횡령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고 돼있음에도 제목을 ‘A씨 100억 횡령’으로 단정하는 식이다.

이유가 무엇이건 그 모두가 ‘기사 내용이 아니라 편집자가 바라는 것을’ 제목으로 뽑은 것이다. “취재기자는 아는 것만 쓰고, 편집기자는 기사내용에 있는 것만 제목으로 뽑아야한다”는 저널리즘의 금언이 절실하게 다가오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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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이냐시오) 전 경향신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