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전통 가정과 가톨릭 가정] (15) 집안어른과 손님 접대하기

김문태 교수(힐라리오) rn서울디지털대학교 교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문화
입력일 2018-10-09 수정일 2018-10-09 발행일 2018-10-14 제 3115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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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애로운 마음으로 손님 대접할 때 가정에도 축복이…
친한 사이일수록 예의를 갖춰야 관계 지속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가짐 필요

부모는 인자함으로써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공경으로써 부모를 섬기는 것이 부모 자식간의 도리다. 이를 달리 생각하면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장벽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 자식 간에 경계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가장 친한 사이일수록 예의를 갖춰야 그 관계가 온전해지고 오래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모가 앉고 눕는 곳에 자식이 감히 앉고 눕지 않으며, 부모가 손님을 접대하는 곳에서 자식이 감히 자기 손님을 접대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소학」 〈내편〉에서도 자식이나 며느리·사위가 부모나 시부모·장인장모가 거처하는 곳에 나아가면, 소리를 부드럽게 하여 입고 있는 옷이 덥거나 춥지 않은지를 물어야 한다고 했다. 또한 병들어 아프면 공손히 만져주고 긁어주며, 부모나 시부모·장인장모가 나가거나 들어오면 공손히 부축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집안어른에 대한 공경심의 발로였다.

또한 부모가 생존해있으면 먼 곳에 가지 않고, 부득이 가야 할 경우라면 반드시 가는 곳과 돌아올 날을 알려야 한다고 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식이 나이가 많이 들었다 하더라도 집밖에 나가서 잘못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게 마련이다. ‘의문지망(倚門之望)’이라는 말이 있다. 부모가 문에 기대어 자식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는 뜻이다.

제나라 때 왕손가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의 어머니가 말하기를 “네가 아침에 나가서 늦게 오면 나는 집 문에 기대서서 네가 오는지 바라본다. 날이 저물어서도 돌아오지 않으면 나는 동구 밖 문에 의지해 네가 오는지 바라본다”고 했다. 노모의 눈에 환갑을 넘긴 자식이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듯하다.

아침과 저녁때의 문안, 외출과 귀가시의 인사는 가족 간의 관심과 애정의 표현이다.

잠자는 사이에 무탈하기를 바라는 마음, 밖에서 무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겉으로 배어난 행위다. 이는 매일 같은 집에서 지내는 가족들이라 하더라도 내내 무사히 잘 지내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인사인 것이다. 가톨릭 가정에서 식구들이 외출하고 귀가할 때, 마음만이라도 밭주인인 보아즈와 일꾼처럼 인사하면 어떨까 싶다. ‘보아즈가 베들레헴에서 와, “주님께서 자네들과 함께하시길 비네” 하고 수확꾼들에게 인사하자, 그들은 “주님께서 어르신께 강복하시기를 빕니다” 하고 그에게 응답하였다.’(룻 2,4) 이처럼 부모나 시부모·장인장모는 아랫사람에게 축복하는 말을, 자녀나 며느리·사위는 윗사람에게 기원하는 말을 서로 주고받는다면 성가정을 닮아가지 않을까. 처음에는 다소 낯설고 쑥스럽겠지만 말이다.

손님이 집에 찾아왔을 때의 접대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손님을 접대함에 풍성하게 하지 않을 수 없으며, 가정을 다스림에 검소하지 않을 수 없다.’(「명심보감」 〈치가편〉)고 했다. 집에 찾아온 손님을 후하게 대접하는 일이야말로 가정에 복을 부르는 일이었다. 예로부터 손님이 집에 드나드는 것은 흥할 조짐이었다. 손님들을 통해 세상 돌아가는 정보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재산을 늘리고 권세를 누리기 위해서는 빠르고 정확한 정보가 있어야 하는데, 여기저기서 찾아온 손님들이 바로 그 창구가 됐던 것이다. 옛날에 어떤 며느리가 손님 접대하는 일이 귀찮아서 그 집을 수호하던 신령스러운 바위를 깨뜨려 결국 망했다는 전설이 오늘날까지 교훈을 준다.

손님을 접대할 때, ‘존귀한 손님 앞에서는 개를 꾸짖지 않으며, 음식을 사양할 때에는 침을 뱉지 않는다.’(「소학」 〈내편〉)고 했다. 개를 꾸짖지 않는 것은 미천한 대상으로써 귀한 존재를 놀라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또한 침을 뱉지 않는 것은 대접하는 이의 음식을 더럽게 여기거나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기 위함이었다. 집안어른도 마찬가지지만 집에 찾아온 어른이 하품하고 기지개하며, 지팡이와 신을 잡고, 해가 이른지 저물었는지를 살피면 아랫사람은 물러가겠다고 청해야 한다고 했다. 어른이 기운이 다하면 하품하고, 몸이 피곤하면 기지개하게 마련이다. 또한 지팡이와 신을 잡고, 해의 그림자를 보는 것은 지루하다는 표시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 아랫사람은 자리에서 물러가겠다고 하여 어른을 쉬게 하는 것이 예의인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예법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인다는 뜻을 가슴에 품는 일이 우선이다. 온화하고 공손하고 자애로운 마음으로 손님을 접대한다면 그 가정에 축복이 내릴 것은 자명한 이치다. 성경 말씀이 가슴에 와닿는다.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주었다. 너는 나에게 입을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 발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부어 발라 주었다.’(루카 7,44-46)

김문태 교수(힐라리오) rn서울디지털대학교 교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