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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제13회 가톨릭 환경상 대상 충북 영동 ‘백화마을’을 가다

정다빈 기자
입력일 2018-10-09 수정일 2018-10-09 발행일 2018-10-14 제 3115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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볏짚·황토로 지은 집에서 친환경 연료…
마을공동체, 생태적 삶을 그대로 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생태회칙 「찬미받으소서」를 통해 병 들어가는 공동의 집 지구를 지키는 방안으로 ‘자연을 돌보는 일’과 ‘더불어 사는 삶’을 제시한다.

그러나 전쟁 같은 도시의 일상 가운데 자연을 돌보며,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실천하는 일은 참 쉽지 않다. 제13회 가톨릭 환경상 대상을 수상한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백화마을은 ‘생태적인 건축, 코하우징(Co-Housing), 경제적 자립’을 원칙으로 더불어 사는 가치를 실현하는 마을 공동체다. 40세대 100여 명의 주민이 함께 살아가는 백화마을에서 2018년의 한국에서 「찬미받으소서」가 제안한 ‘자연과 이웃을 돌보는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엿보았다.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백화마을. 꼭 필요한 크기로 알맞게 지어진 주택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 자연과 더불어 살기

태양광발전설비로 에너지 자립 달성

청주교구 영동 황간성당에서 차를 타고 10여 분. 알록달록한 빛깔로 칠해진 집들이 나타난다. 시골에서는 흔히 보기 어려운 형태의 집들이 모여 있어 유럽의 어느 마을에 온 것 같기도, 잘 꾸며놓은 펜션촌에 온 것 같기도 하다. 꼭 필요한 공간만 차지하도록 계획해 세웠다는 집들은 상당히 작은 크기다. ‘생태적 건축’이라는 기치 아래 지어진 백화마을 40여 가구는 모두 ‘스트로베일(strawbale) 하우스’다.

스토로베일 하우스는 말 그대로 볏짚으로 지은 집이다. 자연에서 구한 볏짚과 황토를 재료로 만든 집은 세월이 흘러 수명이 다하더라도 어떤 폐기물도 남기지 않은 채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 자연을 재료로 만들었다는 상징성 외에도 스트로베일 하우스는 단열성이 뛰어나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한다. 건축 비용이 많이 드는 편임에도 2012년 조성 당시 백화마을 입주가 예정됐던 주민들은 모든 집을 스트로베일 하우스로 짓는 것에 동의했다. 대부분 도시에서 이주를 결정했던 주민들은 서울의 아파트 단지를 시골로 옮겨놓는 것이 아니라 생태적 건축으로 생태적 삶을 살겠다는 의지를 공유하고 있었다.

더불어 모든 집의 지붕과 자투리 공간에는 태양광발전설비를 설치했다. 가구당 12장의 태양광 전지 집열판을 설치해 마을 전체 전기 사용량과 발전량이 거의 유사한 ‘에너지 자립’ 상태를 달성했다. 난방 또한 이산화탄소 발생을 줄이는 효과가 뛰어난 펠릿 보일러를 사용한다. 펠릿 보일러는 화석연료 대신 폐목재를 땔감으로 사용한다.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이 힘들지는 않을까? 김정숙(사비나·청주교구 황간본당)씨는 “불편함이 있긴 있다”면서도 “선구자의 숙명”이라고 말한다. “재생에너지 기술이 아직은 기술적으로 완전하지 않은 부분도 있어요. 하지만 언제나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삶을 꿈꿔 왔기 때문인지 먼저 경험하는 사람으로서 감수할 만한 불편함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마을 회관 한편에 마련된 아나바다 장터.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가져다 두면 누구든 필요한 사람이 가져간다.

# 이웃과 더불어 살기

따로 또 같이… 함께 ‘공동선’ 추구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백화마을 공동체의 중심이 되는 공간, 마을회관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보이는 현판의 문구다. 더불어 사는 마을 공동체에 대한 의지는 백화마을 100여 명의 주민이 공유하는 정신이다. 백화마을은 코하우징(Co-Housing) 마을이다. 코하우징은 각자의 공간을 갖고 사생활을 누리지만 공용 공간에서는 공동체 생활을 하는 협동 주거 형태를 뜻한다. ‘마을회관’은 모든 마을 공동체 활동의 중심이다. 공동식당, 강당, 도서관, 나무 공방, 체육관 등이 갖춰진 회관은 주민들이 함께 조성한 기금으로 마련했다. 주민 총회와 운영위원회 등의 활동을 비롯해 각종 동호회 활동, 소모임도 모두 마을회관에서 이뤄진다. 마을의 주요 의사결정은 비록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다수결이 아닌 ‘만장일치’로 한다.

마을회관 한편에는 ‘아나바다 장터’가 있다. 주민들은 입지 않는 옷이나 사용하지 않게 된 생활용품을 장터에 가져오고, 필요한 사람은 한쪽에 놓인 ‘저금통’에 돈을 넣어두고 가져간다. 저금통에는 자물쇠가 없고 장터를 지키는 사람도 따로 없지만 그 무엇도 없어진 적이 없다.

마을회관 곳곳에는 자전거 발전기, 태양열 조리기, 전기 자동차 등의 시설도 있다. 이는 모두 청소년들에게 재생에너지와 생태적 삶에 대해 알리는 ‘그린에너지체험학교’를 위한 시설이다. 백화마을은 주민들의 ‘경제적 자립’ 실천을 위해 2014년 ‘같이그린 백화협동조합’을 설립해 미래 에너지의 가능성을 알리는 다양한 체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는 백화마을의 대상 수상 사유로 “자연과 이웃과 상생하며, 우리가 추구해야 할 ‘공동선’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고 밝혔다. 백화마을 공동체는 집을 짓고 마을회관을 만들고 공동체를 꾸리고 운영하는 모든 과정에서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더 나은 대안’을 보여주며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는 명제를 증명해 보이고 있다.

‘그린에너지체험학교’ 프로그램 일환으로 마을회관에 설치된 자전거 발전기.

청소년 재생에너지 체험 프로그램 ‘그린에너지체험학교’ 운영을 위해 마을회관에 설치된 태양열 조리기를 설명하는 조영호 마을 대표.

■ 백화마을 조영호 대표

“청소년 체험학교 마련해 기후변화 문제 알려야죠”

백화마을 대표를 맡고 있는 조영호(루카·61·청주교구 황간본당)씨는 귀촌을 꿈꾸는 많고 많은 직장인 중 하나였다. 은퇴가 다가오자 전국 곳곳의 귀촌 공동체를 돌아봤다. 그중에서도 백화마을에 가장 끌렸던 것은 ‘자연의 재료로 지은 집에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이었다.

“가치관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여 산다는 것이 일단 좋죠. 그래도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 한마을에 살아가는 것이라 어려움은 있어요.” 조 대표는 신앙 공동체가 중심이 돼 생태 마을을 이루고 살아가는 방안을 제시한다. “백화마을이 특수한 사례로 남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자연과 이웃과 더불어 검소하게 살겠다는 가치관은 신앙인들이 모일 때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마을이 조성된 지 어느덧 6년. 초반의 동력이 조금은 시들어가는 이때, 가톨릭 환경상 대상 수상 소식은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큰 힘이 됐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가톨릭교회가 펼치는 다양한 창조보전 활동에 대해서 많이 배웠습니다. 우리 마을도 체험학교를 통해 학생들에게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알리고 친환경적인 삶을 살도록 하는 데 더욱 힘을 쏟을 계획입니다.”

정다빈 기자 melani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