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박상호 신부 (어농성지 전담)rn
입력일 2018-10-09 수정일 2018-10-10 발행일 2018-10-14 제 3115호 3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어농성지 곳곳에서 예쁜 국화꽃이 방긋 웃고 있습니다. 사제관 앞 조그마한 화단에도 여러 색깔의 꽃이 활짝 피어 지나칠 때마다 기분 좋게 해줍니다. 이 꽃들은 성지의 청소년위원장 미카엘라 자매님이 봉헌해 주신 선물입니다. 화려한 빛깔의 장미꽃도 아름답고 이름 모를 잡초가 탄생시킨 새끼발톱보다 작은 꽃들도 신비롭고 아름답습니다.

어릴 적 누나와 함께 사탕으로 목걸이를 만들어 퇴근하고 오시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목에 걸어드린 추억이 가끔 생각납니다. 하루 종일 힘든 일을 하시고 집으로 돌아오시는 부모님의 지친 얼굴에 행복의 미소가 활짝 피어날 때의 기쁨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한다는 것 자체는 행복한 일이 틀림없습니다. 선물할 때의 기쁨은 삶에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하지만 사제로 살면서 선물을 주는데서 오는 기쁨보다 받는 기쁨에 익숙해진 저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신자분들은 참 많은 선물을 건네십니다. 선물해 주신 분들의 마음을 생각하며 감사히 받으면 될 일이지만, 때로는 ‘나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이네’, ‘너무 양이 많은데’라며 감사의 마음을 교만한 생각으로 판단하기도 합니다. 나에게 필요한 선물에 대해서는 또 받고 싶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나누어 주시고 알몸으로 아버지께 올라가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고 있는가?’ 이 질문에 선뜻 ‘그렇습니다’라는 대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면 고개가 숙여집니다. 제 생각에 저는 너무도 부유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제 삶의 많은 부분이 풍요롭습니다. 장호원에 살며 저와 함께 청소년사목을 해왔던 요세피나 자매님이 농사지은 고추와 호박, 노각을 따다 주셨습니다. 그리고 맛있는 햇밤을 삶아 오기도 했습니다. 힘들게 가꾼 농작물을 기쁘게 나누어 주시는 그 마음이 참 아름답습니다. 성지 근처에 미리내천주성삼성직수도회 과수원과 농장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생활하시는 수사님들은 매일매일 힘든 농사일을 하십니다. 그리고 양파며 배, 유기농 달걀에 각종 부식들까지 성지에 방문할 때마다 엄청난 양의 먹거리를 슬그머니 놓고 가십니다. 어제는 전례위원장 루피나 자매님의 초대를 받아 김치전에 닭볶음탕, 해물탕을 배터지도록 먹고 왔습니다.

양지에서 생활할 때 용인대리구 복음화국장 정현호 신부님은 많은 이들에게 늘 선물을 주셨습니다. 시계가 멋있다고 말했더니 그 자리에서 풀어서 선물이라고 주셨습니다. 명절에는 고기를 사다가 선배사제와 은인들에게 직접 전해주기도 하시고, 청년들이 놀러오면 용돈을 주셨습니다. 은퇴 신부님들은 물론이요 후배사제와 어르신, 어른, 아이들 가리지 않고 늘 주려고 하셨습니다.

이제 저도 팍팍 퍼 주어야겠습니다. 주는 기쁨이 얼마나 행복한지 자주자주 느낄 수 있도록 열심히 퍼주겠습니다.

박상호 신부 (어농성지 전담)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