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기도 / 김율희

김율희 (임마누엘라) 시인·아동문학가
입력일 2018-10-02 수정일 2019-09-16 발행일 2018-10-07 제 3114호 22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한여름 무더위가 맹위를 떨치더니 어느새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분다. 가을이 왔고 보름달 가득한 한가위도 왔다. 우리 가족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합동위령미사에 참례했다. 주님의 기도를 바치기 위해 남편과 아들, 딸의 손을 잡는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올 초 뜻하지 않게 큰 수술을 받게 되었다. 장장 7시간에 걸친 대수술이었다. 수술 후 깨어났을 때 내가 제일 먼저 느낀 것은 살아있다는 기쁨이었다. 그런데 그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전신을 휘감았다. 마취가 풀리면서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 나의 온몸을 강타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주렁주렁 달려있는 링거 줄에다 몸 곳곳에 연결돼 있는 줄에서 느껴지는 통증들이라니….

참담한 모습은 차치하고라도 일단 통증의 강도가 너무 세서 나는 연신 비명을 질러댔고 점점 더 센 진통제를 맞아야만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밤이었다. 그날도 진통제의 부작용으로 구토와 어지럼증에 시달리다 잠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정신이 혼미해지더니 온몸의 힘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나는 안간힘을 쓰며 오른손목에 차고 있던 묵주를 끌러 기도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입술을 움직일 아주 작은 힘도 내게는 남아있지 않았다. 바로 옆 간병인 자리에서 남편이 자고 있었지만 한 마디 말조차 할 수 없었다. 묵주를 손에 잡은 채 나는 마치 돌이 돼버린 듯 조금도, 아주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정신이 혼미해져가는 와중에 하느님을 향해 마음으로 절규하고 또 절규했다.

“주여 저에게 시간을 조금 더 허락해주소서. 당신은 저의 창조주시니 언제든 저를 데려가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족하고도 부족한 제가 이 세상에서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으니 부디 저에게 당신의 시간을 더 허락하소서. 허락하소서.”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아마도 정신을 거의 잃을 때쯤이었나 보다. 순간 찬란하게 빛나는 흰 빛을 본 듯하다. 눈이 부셔서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강한 빛이었다. 그리고 나는 바로 정신을 잃었다.

다음 날 아침 정신을 차렸을 때, 난 내가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 돌아왔음을 알았다. 하느님께서 부족한 나의 기도를 들어주셨음을 알았다. 그 후 통증은 조금씩 줄어들었고 문어발처럼 몸에 늘어져 있던 줄들도 하나씩 떼고 상처도 차츰 아물어 퇴원을 할 수 있게 됐다.

내가 겪은 일은 신께서 나의 구원을 위해 준비하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받아들이기 힘들고 삶과 죽음을 직면해야 하는 고통이 따르지만 그 또한 하느님의 뜻일 것이다.

‘가장 비참한 비극은 신의 섭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요. 가장 큰 축복은 신의 섭리를 인식하는 것’이라는 말은 그래서 내게 매일의 숙제처럼 다가온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엄마와 아내로서, 사회인으로서 내가 해야 할 소명을 다하고 싶다. 작가로서도 바라건대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은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성당 안을 둘러본다. 사람들의 모습이 참 환하고 밝다. 이 소소한 일상의 기적을 앞으로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 빛이며 진리이신 하느님, 부디 제 발걸음을 이끌어주시고 그 길에 함께 하소서.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율희 (임마누엘라) 시인·아동문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