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주교회의 생태환경위 ‘4·3 70주년과 제주 평화의 섬 생태환경보존에 대한 연수’

정다빈 기자
입력일 2018-10-01 수정일 2018-10-02 발행일 2018-10-07 제 3114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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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의 아픈 역사 깃든 곶자왈 숲에서
지속가능한 평화와 생태적 삶의 길 찾다
주민 학살의 비극적 장소이자 생태·학술적 가치 뛰어난 희귀식물 자생지 ‘동백동산’
무분별한 개발과 관광 대신 환경친화적 생태마을로 가꿔
온난화·기후변화 대처 위한 제주글로벌연구센터도 방문
미래 에너지 가능성 확인

아름다운 자연, 화해와 평화를 향한 열망. 생태·평화의 섬 제주를 상징하는 표현들이다.

그러나 ‘생태와 평화의 섬’은 제주도가 마주한 오늘보다는 희망하는 내일을 말하는 표현이다. 아름다운 자연과 평화를 향한 외침 뒤에는 아픈 역사로 고통받았던 제주의 어제와, 몰려드는 관광객을 수용하기 위한 과도한 개발로 신음하는 제주의 생태계가 있다.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위원장 강우일 주교)는 4·3 70주년을 맞아 평화의 섬 제주의 아름다운 생태환경을 오래도록 보존하는 길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는 9월 28~29일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동백동산과 구좌읍 김녕리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제주글로벌연구센터 등지에서 ‘4·3 70주년과 제주 평화의 섬 생태환경보존에 대한 연수’를 실시했다. 이번 연수에는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를 비롯해 교구별 환경사목 담당 위원장들이 주축이 된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위원들이 참석했다. 참가자들은 제주의 역사와 제주 땅이 간직한 아픔을 되새기며 제주도가 진정한 평화와 생태의 섬으로 거듭나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

■ 선흘리 동백동산, 생명의 땅을 지키는 공동체

생태환경위원회 위원들은 9월 29일 오전 선흘리 동백동산을 찾았다.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에 위치한 동백동산은 1981년 8월 26일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10호로 지정된 상록활엽수 천연림이다. 20여 년생 동백나무 10여만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어 동백동산이라 불리지만 종가시나무, 후박나무, 비쭈기나무 등도 함께 자라고 있어 생태적 보존가치가 높은 지역이다. 2011년에는 습지로서의 중요성을 인정받아 람사르협회가 지정해 보호하는 ‘람사르 습지’로 등록됐고, 2014년에는 세계지질공원 대표명소로 지정되기도 했다.

또한 동백동산은 제주도 특유의 지형인 ‘곶자왈’ 지대로 유명하다. 곶자왈은 나무, 덩굴식물, 암석 등이 뒤섞여 수풀처럼 어수선하게 된 곳을 일컫는 제주도 방언이다. 곶자왈은 자연림과 가시덩굴이 혼합 식생 하는 자연의 보고로 한라산에서 중간산을 거쳐 해안선까지 이어지며 제주도 특유의 지형에서 동식물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완충 역할을 한다.

9월 29일 제주 선흘리 동백동산을 찾은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위원들이 눈을 감고 동백동산 자연의 정취를 느끼고 있다.

이처럼 희귀식물의 자생지로서 동백동산은 생태적, 학술적 가치가 뛰어나다. 그러나 동백동산의 가치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동백동산의 곳곳에는 4·3의 아픔이 숨어 있다. 동백동산 내부로 생태환경위원회 위원들을 안내한 제주생태관광협회 고제량(아녜스) 대표는 동백동산을 “이야기가 깃든 숲”이라고 소개했다. 4·3 당시 선흘리의 주민들은 학살을 피해 동백동산 안으로 숨어들었고 숲 곳곳에는 주민들이 숨어 지내던 흔적들이 발견된다.

특히 도틀굴은 선흘리 주민들이 숨어 지내다 한날한시에 학살당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1948년 11월 21일 선흘리에 주둔하던 군인들은 마을을 불태웠고 주민들은 비상식량을 짊어지고 숲속의 깊은 동굴로 피신했다. 그러나 주민들이 학살을 피할 수 있었던 시간은 고작 사흘이었다. 11월 25일 물을 길어가기 위해 굴을 나온 한 주민이 수색대에 발각됐고 결국 도틀굴에 숨어 있던 주민들은 모두 현장에서 희생됐다.

그러나 오늘의 동백동산은 비극적인 역사가 남긴 아픔을 극복하고 마을 주민들이 주도하는 공동체 주체적 생태관광마을로 거듭나고 있다. 고제량 대표는 수용 가능한 범위를 넘어서는 관광객들이 관광지에 몰려드는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 현상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 대안으로 ‘동백동산’을 보전하며 살아가는 ‘선흘1리’ 마을 사례를 제시했다.

선흘1리는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보전에 참여하고 그 혜택을 누리는 것을 원칙으로 자연과 주민, 관광객이 공존하는 생태관광 모델을 추구하고 있다. 선흘1리는 2007년 환경친화 생태마을로, 2008년에는 생태우수마을로 지정됐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겠다는 마을 주민들의 의지는 폐교를 고려할 정도로 학생 수가 적었던 함덕초등학교 선흘분교를 지켜내는 힘이 되기도 했다. 생태마을이 추구하는 가치에 공감하는 젊은 부부들이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마을로 이주해오기 시작한 것이다.

고 대표는 “자신이 살아갈 지역의 자연과 환경에 대한 결정권을 그 지역 주민들이 갖는 것은 일종의 인권이라고 믿는다”면서 “선흘리 주민들이 주축이 돼 만든 생태관광 사업단 ‘사회적 협동조합 선흘곶’의 목표는 동백동산 보전과 주민 행복”이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마을 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최대의 이윤이 아닌 공동체의 지속 가능한 삶의 공간 유지”라고 덧붙였다. 생태환경위원회 위원들은 자연이 준 선물을 지켜내며 사람과 자연 모두의 행복을 실천하는 선흘1리 마을 사례가 무분별한 개발로 자연과 지역 주민이 고통받는 현실의 대안이 될 것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9월 28일 제주 김녕리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제주글로벌연구센터를 방문한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위원들이 교육용으로 전시된 풍력발전기 앞에서 풍력 발전의 원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 제주의 자연이 만드는 미래 에너지

개발에 맞서 자연과 공동체를 지키는 대안을 확인한 생태환경위원회 위원들은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에 위치한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제주글로벌연구센터로 이동했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은 지구 온난화와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에너지의 효율적인 활용 기술, 지속 가능한 친환경 에너지 기술, 청정에너지 기술 등 다양한 에너지 기술의 연구를 수행하는 기관이다. 특히 제주글로벌연구센터는 제주도의 자연을 이용해 바다가 가진 무한한 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는 해양 염분차 발전 기술, 풍력 발전 기술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해양융복합연구실 김찬수 박사의 안내로 생태환경위원회 위원들은 연구원이 진행하는 신재생 에너지 연구의 현재와 전망을 살펴봤다. 김찬수 박사는 현재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은 제주도의 자연환경을 이용해 조수 간만의 차, 파도 등을 이용한 에너지 개발 연구를 진행 중이지만 설치 장소가 제한적이고 투자 대비 사용 가치가 낮은 편이어서 상용화되기는 어려운 단계라고 설명했다.

생태환경위원회 위원들은 자연을 활용하는 미래 에너지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동시에 대안 에너지의 한계를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는 시간도 가졌다. 재생 에너지 상용화의 핵심은 ‘얼마나 효율적이고 경제적인가’이지만, 현재 개발 중인 재생 에너지가 경제성 측면에서 기존 전력을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바람이나 태양은 24시간 발전 가능한 에너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김 박사는 “결국 시장의 변화와 시스템의 형성이 필요하지만 아직은 그 가능성에 대한 판단이 호의적인 단계는 아니다”라며 이를 개선하기 위한 시민들의 역할로 “미래 세대를 위한 재생 에너지 사용에는 더 큰 비용과 약간의 불편함이 발생할 수 있음을 감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정다빈 기자 melani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