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454) 아름다운 청년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8-10-01 수정일 2018-10-02 발행일 2018-10-07 제 3114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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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에 한 번 정도 만나는 청년이 있습니다. 그 청년은 외국의 어느 연구소에 있는데,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충실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며칠 전 그 청년이 한국에 잠깐 들렀다기에, 우리는 시간을 내어 저녁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언제나 느끼는 감정이지만, 그 날 그 청년과 함께 식사는 하는데 내 마음이 너무나 편안해졌습니다. 어쩌면 그 청년의 미소 띤 해맑은 표정이 일품이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식사를 하는 중에 나는 그 청년에게 물었습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한국에는 짧게 왔다가 가는구나!”

“사실 이번에는 연구 프로젝트의 지도 교수님이랑 마음이 좀 안 맞아서 못 올 뻔했는데, 어찌어찌해서 왔어요.”

“그래 잘했다. 그런데 외국에서 신앙생활은 잘하니?”

“(머리를 긁적이며) 헤헤, 언제나 잘하려고 노력은 하는데…. 아 참, 얼마 전에 연구소에 함께 있는 어느 교수님을 따라 성당에 간 적이 있어요. 차로 좀 달려야 하는 거리인데, 교수님은 그 성당에서 오르간 봉사를 하시더라고요. 보기가 좋았어요. 그래서 그분 덕분에 그 성당을 다니면서, 신앙생활에 좀 더 매진해 보려고요.” “그래 고맙다. 너를 보고 있으면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내 마음이 덩달아 기쁘고 즐거워져. 너는 행복 전파자 같아.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면서도 언제나 타인을 배려하니 말이다.”

“아녜요, 신부님. 저도 어릴 때에는 왕따도 당해보고, 별로 좋지 않은 슬픈 기억들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어떤 계기들이 내 삶을 바꾸어 준 것 같아요.”

“그래, 그런 일이 있었어?”

“예. 예전에 군대 입대하는 문제에 있어서 주변에서 해병대 가라고 할 정도로 외적으로는 제 몸이 건강해 보였어요. 하지만 허리 디스크가 너무나 심했고, 결국은 공익 근무 요원으로 판정을 받게 되었어요. 제가 공익 근무를 했던 곳이 노숙자센터였는데, 거기서 노숙자분들과 함께 지내는 동안 세상을 많이 배운 것 같아요.”

“아, 네가 노숙자센터에서 지냈구나. 그래, 힘들지 않았어?”

“처음에는 노숙자분들에 대한 여러 가지 선입견 때문에 힘이 들었어요. 그런데 생활하는 동안 그분들과 마음을 열고 지냈더니, 몇몇 분들하고는 형, 동생 하면서 지낼 수 있었어요. 노숙자분들의 몸에서 나는 냄새 또한 처음에는 무척 힘들었지만, 익숙하니까 괜찮았어요. 그리고 아침에 출근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길에서 쓰려져 있는 분들을 찾아서 돌보는 거예요. 때로는 그분들이 옷에 배변을 한 채 잠자고 있으면, 그거 다 손으로 치우고 그랬어요. 아무튼 그렇게 노숙자분들과 생활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세상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의 결심이 들었어요. 그래서 공익 근무 마치고, 아마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로 치열하게 살았어요. 열심히 돈을 모아서 그 돈으로 부지런히 공부를 했고, 지금 이렇게 유학 생활까지 하는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저를 동생처럼 아껴주던 노숙자분들이 생각이 나는데…. 음, 그분들은 하느님 품으로 빨리 가시더라고요. 아무튼 그분들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경험한 인생의 수많은 사연들을 지금 제 가슴에 담고, 늘 그렇게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보려고 해요.”

그 청년의 이야기를 듣는데, 겉으로 보이는 그 청년의 미소 띤 해맑은 표정보다 보이지 않는 영혼이 더욱 맑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나에게는 부끄러움과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이 경험한 힘든 세상의 모습을 가슴에 잘 품으며, 보다 좋은 삶을 꿈꾸며 살아가는 그 청년의 모습이 아름답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날, 헤어지면서 그 친구를 안아주며, 그저 고맙다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