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글로벌 칼럼] (22) "나를 팔아넘길 자가 가까이 왔다” / 윌리엄 그림 신부

윌리엄 그림 신부(메리놀 외방전교회)rn※윌리엄 그림 신부는 메리놀 외방전교회 사제로서 일
입력일 2018-10-01 수정일 2018-10-02 발행일 2018-10-07 제 3114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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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에게 배신당하고 아버지에게조차 버림받은 것처럼 보인 예수는 배신할 것을 거부해 배신의 법칙을 깨버렸다. 그리스도는 죽음의 힘을 물리쳤다.

예수께서는 게쎄마니 언덕에서 “나를 팔아넘길 자가 가까이 왔다”(마태 26,46)고 말했다.

요즘 교회 관련 뉴스는 배신자가 우리 가까이에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성직자와 수도자는 자신들에게 맡겨진 아동과 성인을 학대해 배신했다. 주교들과 장상들은 배신자들을 보호하고 이들이 더 많이 학대할 수 있도록 새로운 기회를 줘 우리 모두를 배신했다.

교회의 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이들에 대한 고발과 이들이 갖고 있는 위험성을 무시해 자신들의 소명을 배신했다. 교회는 이러한 성추행 위기가 법적 제재를 받고 대중에게 노출되며 교회가 파산할 때까지 구조적으로 대응을 하지 못해 그리스도와 세상을 배신했다.

우리 모두 배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 배신은 ‘믿음이나 의리를 저버린다’는 뜻이다. 배신을 당해 받는 고통은 특별하다. 우리가 믿고 따르던 사람이나 기관이기 때문이다.

단테는 「신곡」에서 지옥의 가운데에 유다와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를 위한 처벌장을 마련했다. 이들은 예수와 율리우스 시저를 배신한 사람들이다. 단테에게 배신은 가장 큰 죄였다. 단테 말고도 지옥에 배신자를 위한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다.

우리 모두 배신을 경험했다. 또 배신을 하기도 했다. 배신은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가장 힘든 경험이다. 아이들은 친구들에게서만 배신을 당하지 않는다. 부모들도 양육에 소홀하고 아이들을 학대하며 자녀들을 배신한다. 성인이 돼서는 배우자와 연인에게 배신을 당한다. 국가는 독재자 혹은 믿을 수 없는 ‘동맹국’에게 배신을 당한다. 유권자는 부패한 정치인에게 배신을 당한다. 시간과 재능을 고용주를 위해 헌신한 노동자들은 임금과 복지기금 삭감, 해고 등으로 배신을 당한다. 많은 경우 고용주의 배신은 노동자들을 임금 노예로 전락시킨다. 공동선을 위해 기능해야 할 경제와 정치 체계는 불의와 불평등을 조장한다.

남들만 배신을 하는 것은 아니다. 교회는 우리가 세례 때 맹세한 사명을 배신하기 때문에 고해성사를 제정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사명만 배신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 ‘나는 그 누구도 배신한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나도 자신할 수 없다. 만일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진실을 배신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배신하기도 한다. 나는 지금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될 수 있었다. 나는 내 육신과 감정, 영성, 도덕을 좀 더 건강하게 관리하길 바랐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삶은 그 자체로 우리를 배신한다. 질병과 부상, 나이 먹음은 우리의 활력과 능력을 약화시키고 결국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때로는 주님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느끼는 때도 있다. 이 경우 우리는 좋은 동반자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도 십자가에 매달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라고 울부짖었다. 이 또한 배신당한 이의 외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배신자와 배신당함으로 인류는 배신의 바다에 빠져 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한 영화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에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아주 강한 배신 장면을 보여준다. 그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걸어 나오는 장면을 보여줬다. 이는 그리스도가 겪었던 마지막 유혹이다. 죽음을 통해 인류의 죄를 속죄하라는 하느님께서 내린 사명을 배신하는 유혹. 그리스도는 이런 유혹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리스도는 우리 중 유일하게 사명에 충실했다.

배신의 뿌리는 공포에 있다. 그리고 우리의 공포는 죽음에 대한 궁극적인 두려움에 원인이 있다. 제자에게 배신당하고 아버지에게조차 버림받은 것처럼 보인 예수는 배신할 것을 거부해 배신의 법칙을 깨버렸다. 그리스도는 죽음의 힘을 물리쳤다. 이렇게 우리가 배신의 근원이 되는 죽음이라는 공포가 없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토대를 깔았다. 배신이라는 유혹을 거부함으로써,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죽음을 극복하는 새로운 길을 열었다.

윌리엄 그림 신부(메리놀 외방전교회)rn※윌리엄 그림 신부는 메리놀 외방전교회 사제로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