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전통 가정과 가톨릭 가정] (13) 바른 용모 구용(九容)

김문태 교수(힐라리오)rn서울디지털대학교 교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문화가
입력일 2018-09-18 수정일 2018-09-18 발행일 2018-09-23 제 3113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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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손 단정 진중… 밖으로 드러나는 바른 용모도 필요
자신이 반듯이 서지 못한다면 어떻게 남을 세울 것인가
‘얼’은 넋, ‘꼴’은 생김새… ‘얼짱’은 내면 모습에서 찾아야

가정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나 자신부터 안으로 아홉 가지 바른 생각인 구사(九思)에 힘쓰는 한편, 밖으로 아홉 가지 바른 용모인 구용을 갖춰야 한다.

첫째, 발의 움직임은 진중해야 한다. ‘자리에 나아갈 때에는 두 손으로 옷을 거머잡아 땅에서 옷자락이 한 자쯤 떨어지게 하고, 옷을 휘날리지 말며, 발을 황급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소학」 〈내편〉)고 했다. 또한 다리를 떨면 복이 달아난다는 옛말도 있다. 경망한 발놀림을 보고 호감을 가질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성경에서도 ‘사람은 옷차림과 큰 웃음과 걸음걸이로 그 인품을 드러낸다.’(집회 19,30)고 하지 않았던가.

둘째, 손 모양은 공손해야 한다. 손을 늘어뜨리지 않고, 일이 없을 때는 단정히 모아 가만히 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선생을 길에서 만나면 바로 서서 두 손을 마주 잡고 선생이 말씀하면 대답한다.’(「소학」 〈내편〉)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경청하는 모습은 누가 보아도 흐뭇한 광경이다. 공경심이 묻어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손가짐은 사람의 됨됨이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셋째, 눈 모양은 단정해야 한다. 눈동자를 안정시켜 시선을 바르게 하고, 흘겨보거나 훔쳐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곁눈질하거나 훔쳐보는 일은 남의 의도나 반응을 엿보는 한편, 남의 허물이나 비밀을 캐고자 하는 간사하고 사악한 태도기 때문이다. ‘엿보고 아는 체하는 자를 미워한다.’(「논어」 〈양화〉)는 자공의 말도 이와 다르지 않다.

넷째, 입은 꼭 다물어야 한다. ‘기뻐하고 노여워하는 것은 마음에 있고, 말은 입 밖으로 나가는 것이니 삼가지 않으면 안 된다.’(「명심보감」 〈정기편〉)고 했다. 입이 무거울수록 그 말도 무게감이 있으리라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오늘날 다양한 말들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갑론을박의 세상이 됐다. 이는 역으로 많은 말보다는 정곡을 찌르는 한마디 말이 위력을 지니게 됐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많은 것을 간결하게 말하고 알면서도 침묵하는 사람이 되어라.’(집회 32,8)라는 구절이 가슴에 와닿는다.

다섯째, 말소리는 조용해야 한다. 기운을 잘 다스려서 재채기나 가래, 또는 트림이나 잡소리를 내지 않아야 한다. 셰익스피어의 소설 「리어왕」에 등장하는 맏딸 고네릴과 둘째딸 리건은 목청 높여 부왕을 사랑한다고 화려하게 말한 반면, 막내딸 코델리아는 조용히 사랑한다는 말만 해서 쫓겨나고 말았다. 하지만 훗날 거짓된 말을 과장되게 표현한 두 딸에게 구박당하는 리어왕을 구하러 온 이는 조용히 진심을 말한 막내딸이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 진심이 담긴 말은 조용한 가운데 전해지는 것이리라.

여섯째, 머리는 곧게 세워야 한다. ‘처녀 딸 시온이 너를 경멸한다, 너를 멸시한다. 딸 예루살렘이 네 뒤에서 머리를 흔든다.’(이사 37,22) 남을 멸시하거나 조롱할 때 흔히 머리를 흔들고는 한다. 그만큼 머리를 곧게 한다는 것은 곧은 마음을 대변한다. 이는 고개를 까딱하지 않는다는 말이 곧 마음의 동요 없이 꼼짝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라는 데에서도 입증된다. 그러나 무례하게 머리를 치켜세우는 것은 이와 전혀 다른 의미다.

일곱째, 숨쉬기는 고르게 해야 한다. 숨은 생명 그 자체다.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 2,7)는 말씀에 잘 드러난다. 동양에서도 예로부터 숨을 고르게 함으로써 부모로부터 받은 생명을 온전히 지킬 수 있다고 여겨왔다. 숨을 쉰다는 것은 산소를 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몸 밖으로 내보내는 작용이지만, 부모가 물려준 기운을 보존하는 일이기도 하다.

여덟째, 서 있는 모양은 덕성스럽게 해야 한다. 엉거주춤 선다든지 문이나 벽에 기대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내면의 맑음, 곧음, 청렴, 절개, 분수, 염치 등은 외면의 자세로 드러난다. 몸가짐과 행동거지에 그의 인품이 배어나오는 것이다. ‘사실 여러분은 믿음 위에 굳건히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2코린 1,24)라는 말씀은 그들의 태도가 어떠한지를 단적으로 드러내 보인다. 서있는 모습뿐만 아니라 어디에 서있는지가 그를 덕성스럽게 하는 것이다.

아홉째, 얼굴 모양은 장엄하게 해야 한다. ‘사람은 외모로 그 됨됨이를 알고 사려 깊은 사람은 얼굴을 대하면 알게 된다.’(집회 19,29)는 성경 말씀이 딱 들어맞는다. 얼굴은 곧 마음의 거울이다. ‘얼’은 정신 내지 넋이고, ‘꼴’은 모양이나 생김새를 뜻하므로 얼굴은 곧 정신의 모양 내지 영혼의 생김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얼짱’은 겉으로 드러난 육체적인 얼굴이 아니라,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얼’의 모습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동양의 구사와 구용에 대한 교훈이 성경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다. 나 자신이 반듯하게 서지 못한다면 어찌 남을 일으켜 세울 것이며, 어찌 세상을 바로 세울 것인가.

김문태 교수(힐라리오)rn서울디지털대학교 교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문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