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프루이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빈첸시오 드 폴 성인은 가난한 가정 형편 때문에 어려서부터 목동 일을 하며 가사를 도왔다. 하지만 그의 재능을 아깝게 여긴 부친은 그를 프란치스코 수도원에 맡겨 교육을 받게 했고 닥스 대학교와 툴루즈 대학교에 진학해 공부한 뒤 1600년 사제품을 받았다.
1605년 한 귀부인의 기부금을 받기 위해 마르세유에 갔다 오던 길에 성인은 해적들에게 붙잡혀 아프리카 튀니지에서 노예로 팔려갔다. 우여곡절 끝에 2년 뒤 노예 신분에서 풀려난 그는 아비뇽과 로마를 거쳐 프랑스로 되돌아갔다. 이후 파리에서 잠시 궁정 전담 신부와 왕실 함대 사령관이었던 공디 백작의 전속 사제를 맡은 뒤 리옹 인근 본당 사제로 임명됐다.
1625년 ‘라자로회’ 혹은 ‘빈첸시오회’로 알려진 선교사제회를 설립했고, 가난한 이들을 돕기 위한 본당 단위 단체를 만들었다. 또한 1633년에는 루이즈 드 마리약과 함께 오늘날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로 불리는 ‘애덕의 수녀회’를 창설했다.
평생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았던 그는 1737년 클레멘스 12세 교황에 의해 시성됐다. 1885년에는 레오 13세 교황이 모든 자선 단체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