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For”(위한) → "With”(함께하는) / 박상호 신부

박상호 신부 (어농성지 전담)
입력일 2018-09-18 수정일 2018-09-18 발행일 2018-09-23 제 3113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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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구에는 ‘대건청소년법인’이 있습니다. 청소년들을 위한 많은 활동을 통해 우리나라에서도 인정해 주는 모범적인 청소년법인입니다. 그 활동 중 하나가 여성가족부에서 주최하는 ‘한국청소년해외봉사단’ 활동이었습니다. 지금은 대건청소년법인 자체적으로 해외봉사활동을 실시하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매년 국가에서 주최하는 청소년 해외봉사활동에 참가했습니다.

청소년들과 함께 라오스 해외봉사활동에 참여했을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몽족 마을 어린이들과 축구를 했습니다. 8~12살 정도 되는 동네 친구들과 커다란 나무를 골대삼아 38도가 넘는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며 뛰었는데 차오르는 숨만큼 기쁨과 재미도 커졌습니다. 축구시합이 끝나고 저는 아이스박스에 미리 준비해두었던 음료수를 가져와 나누어 줬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받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혹시 돈을 요구할지 몰라서 그런가 하고 “이건 내가 고마워서 주는 공짜 선물이니까 우리 함께 마시자”라는 뜻을 아무리 설명해도 언어의 장벽이 높아 통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통역하는 친구를 통해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우리는 이거 안 마셔도 괜찮아. 집에 가서 물마시면 돼! 우리는 오늘 외국인 친구인 너를 처음 만났고 너랑 축구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 내일 다시 볼 수 있으면 내일 보자!”

저는 순간 얼굴이 달아올랐습니다.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한참 동안 얼굴을 들 수 없었습니다. 저는 가난한 몽족 마을에 와서 현지 아이들에게 선물도 나눠주고 한국음식도 만들어주고 봉사활동을 하겠다는 생각에 들떠있었습니다. 가난해서 신발도 못 신고 좋은 옷도 못 입는 아이들에게 하나라도 더 주고 싶었습니다. 무더운 여름 시원한 음료수를 주면 아이들이 정말 좋아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제가 무엇을 주는 것보다 그저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을 더 행복해했습니다. 외국인 친구와 즐겁게 축구를 하는 것이 물질적인 선물을 받는 것보다 더욱 행복한 순수한 영혼의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다가갔던 것입니다.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생전에 하셨던 말씀이 기억납니다. “우리들은 지금 누구를 ‘위한’ 삶은 잘 노력하고 있습니다. 노숙인과 고아원 아이들 등 어려운 이들을 위해 봉사를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이제는 누구를 ‘위한’ 삶이 아닌 어려운 이들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힘들고 아프고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 생활하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고, 그들의 손을 잡고 위로해 주시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셨습니다. 제 기준으로 바라보고 힘들어하는 이들을 ‘위한 삶’이 아니라 그들의 기준에서 생각하고 ‘함께하는 삶’을 위해 더 노력해야겠습니다.

박상호 신부 (어농성지 전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