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비핵화와 종전선언 사이에서 / 이원영

이원영 (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입력일 2018-09-11 수정일 2018-09-11 발행일 2018-09-16 제 3112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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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우리측 특사단이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협의를 위해 방북했다. 특사단은 올해 세 번째 남북 정상회담을 9월 18~20일 평양에서 열기로 했으며, 정상회담에서 판문점선언 이행 성과를 점검하고 향후 추진 방향을 확인하며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정착 및 공동번영을 위한 문제, 특히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실천적 방안을 협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정은 위원장은 특사단과의 면담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했으며, 트럼프 대통령 1기 임기 이내에 비핵화를 실현해 북미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는 희망을 표명했다고 한다. 이제 특사단 방북을 계기로 교착 상태에 빠진 북미 협상이 진전될 수 있을 것인가가 관심사가 되고 있다.

북한은 자신들의 비핵화 초기 조치와 한국전쟁 미군 전사자 유해 송환 등에 미국이 ‘종전선언’으로 화답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북한이 ‘종전선언’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종전선언’이 북미 정상회담 합의문 첫 번째 조항인 ‘북미 관계 개선’의 첫걸음이라고 보기 때문인 듯하다. 새로운 북미 관계는 결국 적대적 관계의 해체에서 시작되며, 적대적 관계의 해체는 바로 전쟁이 끝났다는 선언, 곧 ‘종전선언’에서 시작한다고 보고 있는 듯하다.

북한의 핵개발 논리는 미국의 적대시 정책으로 인해 자위적 차원에서 핵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었는데, 따라서 자신들의 비핵화 조치에 상응해 미국은 안전보장을 제공하라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우리 특사단에게 ‘종전선언’과 한미동맹 약화, 주한미군 철수 문제는 전혀 관계없는 것이라는 말을 통해 ‘종전선언’ 요구에 대한 의구심을 해소하려고 했다. 사실 ‘종전선언’에 대한 북한의 요구는 논리적으로 결함이 없다. 문제는 북한이 하는 주장이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는 것이 냉엄한 국제정치의 현실이라는 점이다.

이번 방북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서로 어떤 메시지를 주고받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교착 상태에도 불구하고 서로 메시지를 주고받았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우리는 양측 의견의 단순 전달자가 아니라 김정은 위원장의 언급처럼 트럼프 대통령의 첫 번째 임기가 끝나기 전에 비핵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북미 양측을 중재하고, 중재안의 실행을 촉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바오로 6세 교황이 평화를 위해 10월에 바치는 기도에 관해 밝힌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에서는 마리아의 ‘중재성’(Mediatio)을 설명하고 있다. 9월에 남북 정상회담과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와 종전선언에 대한 우리의 중재가 성공해, 로사리오 성월인 10월이 오면 한반도 평화를 향한 길이 다시 활짝 열려 남북한과 미국 모두 뚜벅뚜벅 발걸음을 떼어 놓을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빌어 본다.

이원영 (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