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독자마당] 내 신앙의 첫 걸음마

김행남(헬레나·광주대교구 영암 삼호본당 용앙공소)
입력일 2018-09-11 수정일 2018-09-11 발행일 2018-09-16 제 3112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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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시골에 사는 할머니입니다. 성당에서 신문을 가져다 읽고 있는데 문득 어린 시절이 생각나서 몇 자 적어 보냅니다.

어린 시절, 방학 때면 언제나 외갓집에 갔었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께서는 성당에 다니셨다. 어린 내 눈에 비친 두 분의 모습은 이상했다. 작은 상에 촛불 두 개를 올려 켜 두고 십자가를 세우고 푸른 망토 같은 것을 두른 예쁜 인형까지 올려두고는 같은 말을 되뇌면서 작은 알맹이를 손으로 돌리고 계셨다. “할머니, 뭐하세요?”하면 “묵주신공 바친다”하시면서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셨다. 더 이상한 것은 오른손으로 이마와 가슴, 이쪽 저쪽을 휘저으면서 “성부와 성자와…, 아멘”하시는 모습이었다.

또한 두 분은 매일 낮 12시 성당에서 종소리가 울리면 성당 쪽으로 돌아서서 두 손을 모으고 삼종기도를 바치셨다. 길을 걷다가도 성당 종소리가 울리면 그 자리에 서서 기도를 바치셨는데, 어린 마음에 그 모습이 창피하고 이상해 어딘가로 숨고 싶기도 했었다.

내게는 네 분의 외삼촌과 두 분의 이모가 계시는데, 엄마까지 7남매 모두에게 신앙을 물려 주셨다. 나도 어느새 조금씩 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읍내에 있는 성당을 혼자서 찾아갔다. 하지만 대대로 이어진 유교 집안인 친가 쪽에서 천주교를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아버지는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성당에 가는 것을 반대하셨다. 20㎞가량 되는 먼 길이었으니 어린 나에게 힘든 길이기는 했다. 그 이후로 결혼을 했고, 시댁은 전형적인 불교 집안이었기에 또 성당에 가지 못했다. 내 생각은 접어두고 시댁에 맞춰 지내다 남편의 직장을 따라 작은 소도시로 나와 애들을 키우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성당 앞을 지나치다 충동적으로 사무실로 들어갔고 고심 끝에 세례를 받기로 결정했다. 6개월의 교리공부를 무사히 마치고 세례를 받았다. 그 당시에는 하루하루가 힘들었지만 참 잘한 일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여주고 싶다. 하얀 소복을 입고 신부님께 세례를 받던 날, 왜 그리 눈물이 나던지…. 가슴에 알 수 없는 기쁨이 일어 나를 뜨겁게 했었다. 그때 이미 하늘나라로 떠나셨던 외할아버지·외할머니가 많이 그리웠던 순간. 그 두 분의 신앙생활이 내겐 큰 울림이 되었다.

이후 삶에 치여 몇 년 냉담을 하고 있을 때 둘째 외삼촌에게서 전화가 왔다. 생전에 외할머니가 너를 위해 기도를 많이 하셨다며, 그만 쉬고 성당을 찾아가라고 하셨다. 그 말씀에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받고 방황하던 신앙을 제 자리로 돌렸다. 마음속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다시 태어난 나…, 참으로 먼 길을 돌아온 것 같다.

지금 내가 다니는 곳은 공소라서 교우분들이 50명도 채 되지 않는다. 본당과 공소를 오가시며 사무장도 없이 고생하시는 신부님을 보면서 늘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이제 새로 성전을 지어 새 성전에서 미사를 봉헌할 수 있게 돼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이 성전을 위해 애쓰신 은인들께도, 묵묵히 고생하신 선교사님께도 큰 박수를 쳐 드리고 싶다.

김행남(헬레나·광주대교구 영암 삼호본당 용앙공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