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기로에 선 북미 관계 / 이원영

이원영 (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입력일 2018-09-04 수정일 2018-09-04 발행일 2018-09-09 제 3111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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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정상회담 이후 교착 상태에 빠져 있던 북미 관계가 기로에 선 것으로 보인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4차 방북을 무기 연기한다고 선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비핵화 과정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지 않으며, 중국은 미중 무역 전쟁 발발 이후 대북 제재를 오히려 완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미국의 태도에 북한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다. 북한은 지난 4월, 조선로동당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핵·경제 병진 노선’을 폐기하고, ‘혁명발전의 새로운 높은 단계의 요구에 맞게 사회주의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할 데 대하여’라는 제목의 결정서를 채택했으며, ‘현재의 핵’을 동결하고, ‘미래의 핵’도 폐기한다는 의사를 공식화했다. 그리고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했으며, 미군 유해 송환을 하는 등 북미 정상회담의 합의사항 이행을 위한 조치를 진행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을 위시해 관련 국가들 내에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진정성에 회의적인 시선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런데 현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 연기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의 대화 자체를 거부하고 있지 않으며, 행정부 각료들의 강경한 대북 발언에 대해서는 일정하게 선을 긋고 있다. 즉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북미 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현재의 정세는 어쩌면 지난 5월 북미 정상회담 연기 이후의 정세보다 더 엄중할 수 있다. 미국의 국내 정치 상황을 볼 때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관계 개선 의지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9월에는 북한 정권 수립 기념일인 9·9절이 있으며, 시진핑 중국 주석의 방북이 관심사가 돼 있다. 그리고 올해 세 번째의 남북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으며, UN 총회도 열린다. 따라서 정치적 이벤트들이 예정돼 있는 9월을 정세의 분기점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입장에서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 미국이라고 생각하더라도, 미국이 북미 관계 개선에 나서게 하는 것이 북한의 미래를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이다. 미국을 비난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비난만으로 미국을 움직일 수 없다.

이번에도 우리는 북미 협상의 모멘텀을 되살리기 위해 신뢰가 없는 북미 양측을 설득해야 한다. 그렇다면 북한이 핵무기 및 핵물질 신고를 한 후 종전선언을 진행하고, 신고에 따른 핵사찰이 시작되면 사찰의 단계적 진전마다 대북 경제 제재 해제 역시 단계적으로 진행하며, 북한의 비핵화 미세 단계마다 우리가 검증 과정에 참여하는 접근법을 제안, 설득하는 것은 어떨까? 그러나 ‘사람의 마음속에 많은 계획이 들어 있어도 이루어지는 것은 주님의 뜻뿐이다’(잠언 19,21)고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간절한 기도일 것이다.

이원영 (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