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말씀과 말을 생각하며 / 김진돈

김진돈 (그레고리오) 시인rn
입력일 2018-09-04 수정일 2019-09-16 발행일 2018-09-09 제 3111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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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 구역모임 활성화를 위해 신자들의 기도뿐만 아니라 독서와 강론까지 한 구역에서 준비한 적이 있다. 당시 내겐 신자들의 기도가 배당됐다.

하지만 행사를 일주일쯤 남겨두고 구역장님이 내게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김 그레고리오가 강론을 했으면 해요. 원래 강론을 하시기로 한 형제님이 어렵겠다고 전갈이 와서요. 날짜는 며칠 안 남았는데, 그동안 형제님이 강의도 해왔고 방송출연도 많이 했으니 형제님만 믿겠습니다.”

한참을 망설이다 ‘주님의 뜻이라면’ 하고 승낙했다. ‘어떤 주제로 할 것인가’ 응답을 기다리며 틈나는 대로 매일 30분 이상 묵상했다. 행복한 삶을 위한 신앙인의 자세, 말씀과 말이 떠올랐다.

얼굴에는 이목구비가 있다. 그중 눈과 귀와 콧구멍은 두 개다. 적극적으로 보고 열린 마음으로 많이 들으라는 의미다. 신앙인은 성경을 더 읽고, 기도와 묵상을 통해 주님의 소리를 더 들어야 한다. 그런데 입은 한 개뿐이다. 문제가 생기면 살아갈 수가 없다. 인체에서 한 개짜리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 말을 할 때는 신중하고 조심해야 하는 이유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태 7,1-3)라는 말씀은 살면서 우리가 매일 불신과 험담과 질투, 거짓의 벽이라는 유혹을 받는다는 것을 알려준다.

사람을 만나다 보면 말로 많이 상처받는다. 가까운 가족에게, 친구나 본당 교우에게 상처를 받기도 한다. 그래서 혀는 입술과 치아라는 이중벽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뱉은 말은 부메랑처럼 돌아 결국 나에게 오기 때문에 신중하고 조심해야 한다.

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경청이지만, 참 어렵다. 타인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는 경청에는 사랑이 필요하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 등이다. 주님이 가르쳐주신 성경도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이라는 한 말씀으로 귀착된다.

“우리는 쉽게 이 세상의 행복지수를 증가시킬 수 있다. 외롭거나 용기를 잃은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존중하는 몇 마디의 말을 건네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오늘 누군가에게 무심코 건넨 친절한 말을, 당신은 내일이면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일생동안 그것을 소중하게 기억할 것”이라는 말이 있다. 남을 배려하는, 희망 주는 말은 그만큼 오래간다는 의미일 것이다. 결국 행복이나 불행, 성공과 실패의 열쇠가 평소 내가 던지는 말 한마디에 있다는 뜻이다. 그날 이렇게 강론을 마치니 뜨거운 은총의 박수를 받았다.

아무런 성찰 없이 말을 함부로 던지며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평소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를 묵상케 해주는 시가 있다. 이해인 수녀님의 ‘나를 키우는 말’이라는 시다.

“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은 / 나도 정말 행복해서 / 마음에 맑은 샘이 흐르고 // 고맙다고 말하는 동안은 / 고마운 마음 새로이 솟아올라 / 내 마음도 더욱 순해지고 // 아름답다고 말하는 동안은 / 나도 잠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 마음 한 자락이 환해지고 // 좋은 말이 나를 키우는 걸 / 나는 말하면서 / 다시 알지.”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진돈 (그레고리오) 시인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