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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한반도 평화나눔포럼] 특별 대담 ‘함께 평화를 꿈꾸다’

정다빈 기자
입력일 2018-09-04 수정일 2018-09-05 발행일 2018-09-09 제 3111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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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길 함께 모색한 대화와 만남의 장

9월 3일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 파밀리아 채플에서 열린 ‘함께 평화를 꿈꾸다’ 특별대담은 빈곤과 차별, 갈등의 한복판에서 그리스도 정신을 증거해 온 아시아 교회 지도자들의 보다 진솔한 이야기를 듣는 시간으로 진행됐다. 루이스 타글레 추기경은 바쁜 일정으로 9월 2일 출국해 대담에는 함께하지 못했다.

■ 오스왈드 그라시아스 추기경

“대화로 끝나지 않고 함께 행동으로 옮기는 게 중요”

아시아주교회의연합(FABC) 의장이자 교황청 9인 추기경위원회(C9) 위원이기도 한 봄베이대교구장 오스왈드 그라시아스 추기경은 ‘화해의 마스터’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처음 대주교가 됐을 때, 어떤 사목표어를 정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친구들이 ‘넌 화해에 뛰어나지 않니, 화해에 대한 모토를 정하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제가 화해 마스터라는 것은 과장이지만, 저는 갈등과 고통에 직면했을 때 모두가 함께 모여 노력하는 일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라시아스 추기경은 다양한 문화와 민족, 종교가 공존하는 인도에서 가톨릭교회를 대표하는 지도자로서 사목하며 종교간 대화와 화해의 과정에 앞장서 왔다. 그러나 그는 “다른 종교와 다른 문화와의 대화는 중요하다”면서도 “대화가 대화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의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같이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른 문화와 종교에 개방적인 그라시아스 추기경의 태도는 종종 ‘종교 다원주의’라는 오해와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차별과 배제에 맞서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화해시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소명”이라고 말한다.

“물론 화해를 위한 시도는 자주 실패합니다. 저 역시 언제나 화해를 향한 목표를 세우지만 가끔은 성공하고 가끔은 실패합니다. 그러나 중립성을 잃지 않고 신뢰를 지키는 가운데 최선을 다한다면 나머지는 하느님이 원하시는 대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 찰스 마웅 보 추기경

“만연한 폭력 속에서도 오직 신앙의 관점에서 행동”

혹독한 식민지배와 저항적 독립운동, 군부 정권의 독재 정치와 민주화 운동, 오랜 투쟁과 갈등 속에 깊어진 상처까지. 미얀마의 현대사는 한국과도 많이 닮아 있다. 보 추기경은 “역사의 상처는 무거운 십자가를 지웠지만 용서와 사랑을 통해 우리는 이 상처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국과는 달리 미얀마의 혼돈은 현재 진행형이다. 몇십 년간 계속된 군부 독재는 미얀마의 많은 시스템을 붕괴시켰고 회복은 더디게 진행 중이다. 빈곤, 교육의 부재, 마약 문제, 인신 매매 등은 쉽게 극복하기 어려운 고질적 문제다. 보 추기경은 “폭력이 만연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오직 신앙의 관점에서, 특히 가톨릭 사회교리의 지침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불교 신자 비율이 90%에 달하는 미얀마에서 가톨릭교회는 불교와 이슬람을 포함하는 폭넓은 종교간 대화 모임을 주도하고 있다. 군부의 부당한 영향력 행사나, 법이나 상식보다 폭력이 앞서는 사회적 문제를 마주할 때 종교 지도자들은 모여 입장을 정리하고 함께 행동에 나선다.

보 추기경은 “아시아의 많은 지역은 여전히 억압 아래 있고,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나쁜 사람들이 나쁜 행동을 해서가 아니라, 선한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지 않아서 세상은 슬픈 곳이 된다”는 말을 인용해 “상호 협력과 이해, 선한 사람들이 나서서 목소리를 내는 행동만이 우리의 답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세바스찬 프란시스 쇼 대주교

“두려워하지 말고 싸우지 않으며 세상에 빛 전해야”

파키스탄의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마주한 위협과 위험은 심각한 수준이다. 쇼 대주교는 대담에서 2016년 부활절에 일어난 테러에 대해 들려줬다.

“부활절을 축하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인 그리스도인들을 겨냥한 이슬람 근본주의 집단의 자살 폭탄 테러가 여기저기서 발생했습니다. 사건 발생 후 열흘 동안 장례미사를 치르느라 너무 바빴습니다. 교구를 돌보는 주교로서 너무나 힘든 시기였습니다. 어느 곳에서는 열일곱, 열아홉의 자매가 목숨을 잃었고 저는 차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 제가 어떻게 이들을 위로할 수 있겠습니까?’ 쇼 대주교는 하느님께 답을 간구했고 하느님은 답을 주셨다. 성경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문득 떠오른 것이다. 그는 그날 이후 2개의 ‘에프’(F)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하나는 두려움(Fear)에 대한 것입니다. 상황은 너무나 어렵지만 슬퍼하고 두려워하며 울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하나는 싸우지(Fight) 말자는 것입니다. 두려워말고 싸우지도 않는다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정답은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돼 세상에 빛을 전하는 것”이다. 두 자매의 장례식에서 그가 말한 ‘두개의 에프’ 운동은 널리 회자됐고, 파키스탄의 그리스도인들이 용기를 내 세상 밖으로 향하는 계기가 됐다. 쇼 대주교는 “파키스탄에서 태어난 그리스도인들이 우리의 선택으로 이곳에 온 것은 아니지만, 이런 혼란의 상황에 우리를 보내신 주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며 “아마 우리가 세상의 빛이 되길 바라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다빈 기자 melania@catimes.kr